달콤 쌉싸름한 한국판 로맨틱 코미디
단순한 스토리, 튀는 감각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지난해 ‘조폭마누라’와 ‘두사부일체’로 조폭영화의
신드롬을 일으킨 신은경, 정준호가 이번에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녀주인공으로 만났다.
요리에서 단맛을 내기 위해 소금을 뿌리듯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함을 한 층 더하기 위해 쌉싸름한 맛을
내는 장치들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놓았다. 이 영화는 두 남녀가 만나서 싸우고 사랑하고 키스하기까지의 지루한 과정을 그린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한 여자의 사소하면서도 귀여운 일상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한국판 로맨틱 코미디다.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중매를 전문으로 하는 결혼 정보 회사. 외로운 청춘 남녀들을 짝지어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커플 매니저들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주변 친구들에게 커플 연결 솜씨를 자랑해 온 효진(신은경)은 사회에 나와서도 결혼 정보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유능한
커플 매니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외모, 재산, 학벌 등의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남자’ 현수(정준호)가 등장한다. 어머니 등쌀에 떠밀려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지만 정작 현수 본인은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 불량회원이다. 미팅 시간에 늦는 것은 보통이고 상대의 이름도 모른 채 미팅을 끝내버리기가
일쑤다.
덤벙대고 실수투성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효진과 성격, 외모, 학벌, 재산 등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 현수는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자주
마주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스물여덟의 젊은 감독 모지은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신선한 감각으로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끝없는 식욕과 수다 속에 결혼하지 못한 여자의 심경을 쏟아내는 효진의 친구들과 배경처럼 등장하는 ‘바퀴벌레 커플’ 등의
재미도 이 영화에서 빼놓지 말고 살펴야 할 요소이다.
감각적인 소품과 다양한 캐릭터
드라마의 단막극 같은 단순한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다른 영화에 비해 색다른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감각적인 소품과 다양한 캐릭터이다.
주인공 효진의 외로움과 지루함을 달래주는 한 알의 캡슐 알약. 생일에 혼자 지내는 것도 모자라 감기까지 걸린 효진은 캡슐 알약을 해부해
알록달록한 가루를 일일이 세어 가면서 손가락으로 찍어먹는다. 효진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캡슐 알약 하나로 효진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감독의 신선함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또 노래방에서 볼 수 있는 노란 탬버린은 그녀가 지칠 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도구로 등장한다. 실연 당한 선배가 밤새 노래방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탬버린을 슬쩍 훔치는 것도 그녀만의 위로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밖에 효진의 고객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상명세와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등을 그래픽으로 처리한 것은 마치 텔레비전의 미팅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해 잔잔한 재미를 주고 있다.
이런 감각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로맨틱 코미디가 내세우는 달콤함과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랑을 찾아가는 여 주인공의 시선을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보여주면서 쌉싸름한 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감초 같은 연기로 영화를 빛내는 주연 같은 조연들의 캐릭터 연기도 영화 속에서 살아 숨쉰다. 시트콤에서 활약하고 있는 공형진은 효진의
둘도 없는 이성 친구로 등장해 술주정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효진의 선배로 나오는 김여진은 장총을 들고 실연 당한 여인의 모습을 재밌게 표현했다.
더불어 카메오로 출연하는 박상면과 가수 탁재훈은 관객들에게 보너스 선물과도 같은 신선함을 준다.
맥 풀린 내용 전개
영화는 다채로운 캐릭터와 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쉴 새 없이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축이 되어야 할 남녀 주인공은 지나친
우연적 만남으로 내용전개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더불어 남자 주인공 현수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효진에 비해 약해 그저 ‘완벽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감독이 다양한 커플들을 등장시켜 결혼을 앞둔 남녀의 심리묘사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중심 되는 축이 다른 이야기보다 튀지 못한 것은 이 영화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듯이, 감독이 보여주려 했던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때로는 관객들의 영화 몰입에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독신 노처녀들의 심정을 영화 속에서 대변해주는 효진의 여자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폭력과 과장된 웃음에서 벗어나 여성 캐릭터의 일상을 충실히 좇은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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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정 기자 kiki0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