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전(古錢) 4,658종에 대한 신상명세서
옛 화폐 사랑, 10여 년 각고 끝에 펴낸 <한국의 古錢>
돈. 세상을 돌고 돈다는 돈. 돈은 참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곁을
지켜왔다. 하지만 돈이 우리 땅에서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수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사실 현대 사회에선 돈이 ‘만물의
가치를 측정하는 경제의 신(神)’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몇 백년 전 조선시대 중엽만 하더라도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그다지 상업 경제가 활성화되지 못한 탓이리라. 그러기에 옛 화폐의 보관과 기록도 덩달아 홀대받아왔는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고전(古錢) 연구감정위원회 회장 한영달 씨가 총 4,658종의 옛 화폐들에 대한 생김새와 이야기를 기록한 <한국의 古錢>(도서출판
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한씨는 강원일보사 편집국장과 한국기자상 심사위원(1994년)을 지낸 37년 경력의 언론인 출신이다. 한씨가 고전
연구에 매진하게 된 것은 언론계 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부터다. 즉 이때부터 “‘취미+투자’의 화폐수집이 ‘취미+연구’로 전환된 것”이다.
한씨는 ‘저자의 말’을 통해 “개인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에 겁 없이 덤벼들었다가 10여 년의 각고 끝에 마무리한 것”이라면서, “저자를
지켜본 어느 선배는 ‘팔만대장경을 혼자 만들고 있다’는 격려의 농을 던지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고조선시대부터
화폐 사용해”
그만큼 <한국의 古錢>에는 고전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우선 실물 크기를 원칙으로 옛 화폐의 사진과 탁본을 제작
연대순에 따라 고유번호를 붙여 실었다. 또 조선후기 많이 유통됐던 상평통보의 경우 주전소(鑄錢所)별 연대순으로 번호가 부여돼 있을 정도다.
그밖에도 이 책 곳곳에서 화폐를 종류별로 꼼꼼히 기록하려 한 저자의 정성이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가 처음으로 유통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한영달 씨는 “고조선시대에 이미 자모전(子母錢)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마한은
동전을 (사용했고), 변·진한, 가야, 백제시대에 제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철정전(鐵鋌錢)은 국내 여러 고분에서 출토되어 삼국시대 이전의
화폐실물이 발견 확인된 셈”이라고 밝혔다.
한씨는 또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된 백제 초고왕의 철정전 하사 내용” 등을 거론하며, “철기문화가 2세기 가량 뒤졌던 그 시대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고 한국 철기문화의 일본 수출에 대해 설명했다. 반면 “임나본부가 있었다는 가야지방에는 일본인의
유물이나 유적, 젓갈짝 하나 출토되지 않고 있다”고 임나일본부설을 통렬히 비판했다.
한편 고려시대는 “대외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여러 가지 금속화폐를 제조, 화폐사에 획기적 발전을 이룩한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상평통보, “누구나 공평하게 쓸 수 있는 돈”
한영달 씨는 “조선조는 건국초기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면서 화폐의 발행을 국가가 장악하기 위해 명목 화폐제도의 시행정책에 왕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도 “화폐의 유통 보급 즉 행전(行錢)에는 실패했다”고 기술했다. 이는 “화폐가치를 실용성에서 찾는 국민들의 성향과
태환되지 않는 종이돈 저화(楮貨)에 대한 불신”때문. 화폐가 전국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상평통보(常平通寶)부터다. 한씨는
상평통보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돈”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밝혔다.
한씨는 후기를 통해 “이 책에는 한국 고전 전 종목을 수록하면서 고전사(古錢史)를 새롭게 정리했다”면서 “한국 화폐사의 문제를 제기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며, 다음 세대들이 이어가 한국 고전계를 잘 발전시켜 주길 간곡한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원순 기자 blue@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