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 ‘사진’
예술적 가치 상승, 탈 장르화 경향 뚜렷
최근 미술관들은 앞다투어 사진전을 기획하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사진이
급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성도 높아 관람객의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가나아트 센터의 ‘지금. 사진전’이나 아트선재센터의 ‘배병우
사진전’ 대림미술관의 ‘사진의 역사, 그리고 패션과 패션모델의 탈신성화의 역사’ 등은 휴가 기간에도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가나아트 센터의 큐레이터 윤옥영씨는 “작년부터 사진이 뜨고 있다. 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붐이었는데, 그 영향이 최근 들어 국내에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사진의 가치가 높아진 1차적 원인은 기술적 진보때문. 사진의 표현 영역이 확대되면서 예술성 높은 사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사진은 기술과 예술의 사생아로 취급받았지만 예술적으로 진화한 현재 사진의 위상은 순수미술에 버금간다. 사진은 이미 소더비와 같은 경매사를
비롯해 해외미술시장 매매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비엔날레 등 국제 대형 미술행사에서 사진의 비중은 순수미술을 능가할 정도로 높아지는
추세다.
회화, 조각, 설치에서 사진, 영상과 같은 뉴미디어로의 이동은 현대미술의 예술적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현대미술의 자기반성에
의한 가장 적극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소재와 기법의 다양화
사진이 현대미술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사진이 가진 무한한 확장성 때문이다. 회화, 설치, 조각 등 모든 순수미술을 향해 열려있는 사진은
단순한 재현의 기능을 넘어서 강력한 표현력을 얻게 된지 이미 오래다. 아직 예술사진이라면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물을 기록성의 차원에서 담아낸
순수사진만 떠오른다면, 사진집을 뒤져보길 권한다. 시간이 되다면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지금, 사진전’(8월 25일까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세계적 사진 거장들의 최근작들을 모은 이 전시는 1990년대 이후 사진예술의 향방을 잘 보여준다. 퍼포먼스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작품은 사진과 퍼포먼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화면 분할과 채색으로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길버트 & 조지의 ‘길’이나,
흑백사진에 물감으로 정교한 색을 입힌 튠 혹스의 작품은 사진이라기 보다는 미술적이다. 특히 튠 혹스의 사진은 설명이 없다면 그림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물론, 사진이나 그림 어느 쪽으로도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할 필요도 없다. 잡지와 포스터, 광고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포토모자이크의
창시자 로버트 실버스는 무수한 사진 조각을 붙여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한 각종 미술 작품과 유명인의 초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도 사진으로 입체적인 조형물이나 설치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도 더 이상 놀라운 것이 아니다. 사진은 계속해서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다. 특히 컴퓨터 기술 발전을 통한 디지털 사진영상의 확산은 사진의 새로운 방법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급성장하는 한국사진
국내 사진계도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 이후 예술의 한 매체로 인식을 전환한
한국의 사진은 2000년대 들어 제2의 전환기를 맞았다. 해외 유학파들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신인들이나 순수예술
진영의 유입도 사진예술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순수미술에서 사진으로 전환하려는 예술가는 주위의 만류를 들어야 했다. 사진의 위상이 순수미술에 비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진이 예술로 인식된 역사가 짧고, 저변인구가 적다보니 국내 사진예술은 질적으로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외적인 요인이지만
사진 작품을 제대로 살려줄 액자 기술조차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7월 19일 가나아트센터 아카데미 홀에서 열린 ‘현대사진의 예술적 근거’에 관한 세미나에서 계원예술대 이영준 교수는 한국 사진의 문제점을
몇 가지로 지적했다. 소수 스타급 작가들의 명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 교수는 첫째로 꼽았다. 대표적 스타 작가들이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이 없고 진정한 의미의 세대교체나 교류도 없다는 것이다.
그밖에 유형화 획일화되는 경향, 개념적 검토와 반성이 약하다는 점 등을 비판했다. 대안으로 사진교육과 인문학적 교육의 만남, 과학, 인류학,
범죄수사같은 다양한 영역들과의 변증법적 모색 등을 제시했다. 세계 시장을 향한 길은 멀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사진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