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하는 필립, 낙관하는 스필버그
‘마이너리티 리포트’ 원작과 영화의 차이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은 SF 소설의 대가 필립 K. 딕의 동명소설이다. SF 문학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던 필립은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리콜’의
영화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뛰어난 상상력과 인간 정체성에 대한 심오한 고찰,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등에 매료된 필립의 팬들은 스필버그가
원작을 훼손시켰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사실 스필버그는 근본적으로 필립의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두뇌만 거대한 기형적 존재의 예언자 따위나 등장하는 냉소적이고 허무한 이야기는
그의 기질상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예상대로 스필버그는 중년의 배 나온 주인공을 탄탄한 몸매의 톰 크루즈로 바꾸고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만들었다.
‘마이너’ 소설의 철학, ‘메이저’ 영화의 오락
필립의 팬들은 주류 메이저 감독인 스필버그 영화에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제목은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그런 제목은 평생 편집증과 신경쇠약,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불운한 천재에게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런 말장난이 아니라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제목은 영화보다 원작에 더 잘
맞아떨어진다. 원작은 제목과 정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서 제목은 스토리나 주제와의 연결고리가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예지자들의 예언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프리시스템에 근무하는 앤더튼은 어느날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리포트를 발견한다. 세 예언자의
예언이 일치하지 않을 때 다수의 견해를 취한다는 시스템의 원리에서 착안, 앤더튼은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찾는다. 여기까지의
설정은 영화와 소설이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다른 길로 향한다.
소설에서 앤더튼은 예언을 알고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발견한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존재한다는 반전이
뒤따른다. 메조리티 리포트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시스템의 오류를 증명하고 예정된 미래를 피하려고 했던 앤더튼은 시스템의 무오류성을 증명하기
위해 예언대로 살인을 하는 지독한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다. ‘미래는 예언대로 확정된 것인가, 예언을 알고 미래를 고칠 것인가’라는
철학적 딜레마는 ‘예언을 알기 때문에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인간 의지의 낙관론에 묻혀버린다. 영화가 추구하는 것은 허망하고 끝없는 혼란이
아니라 명백한 휴머니즘, 가족주의, 영웅주의다. 개인의 음모는 저지 당하고 예언자들은 기계적 역할에서 풀려 나온다.
필립이 문명 발달에 의한 인간소외와 정체성의 혼돈, 권력욕과 전쟁으로 파멸하는 비극적 세계를 제시한다면 스필버그는 불안한 세계에 대한 안도와
희망을 선사한다. 모든 것은 인간의 숭고한 의지로 극복될 것이며, 갈등을 넘어 화해된다는 식이다.
애초에 원작은 발상과 철학은 대단하지만 장편영화로 만들기에는 단조로운 것이었다. 스필버그는 헐리우드 주류의 화법으로 탄탄한 서사구조를 짜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원작에는 없는 미래 도시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과 화려한 시각적 묘사는 스필버그의 재능을 확인시켜주기에 손색이 없다. 소설의
심도 깊은 철학과 영화의 흥미진진한 오락적 요소, 두 가지 모두 즐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