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즐거우나 내용은 산만하오
휴먼코미디 시대극 ‘YMCA 야구단’
‘조선 최초의 야구단’. 이 흥미로운 소재는 다양한 드라마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신문물의 유입이나 일제치하라는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정통 시대극이 될 수도 있고, 역경과 한계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스포츠 드라마도
가능하다. ‘YMCA 야구단’은 이 모든 주제를 드러낸다. 하지만, 어떤 메시지도 분명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쿨러닝’ ‘메이저리그’ ‘소림축구’ 류의 스포츠 휴먼코미디다. 어설픈 멤버들이 모여 좌충우돌 실수를 거듭하며 훈련한
끝에,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선다는 것이 장르의 법칙.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주변의 놀림감이 되거나 부당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보통 ‘승리’라는 달콤한 결말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선수들은 결말에 이를수록 숨겨진 천재성을 발휘하고 어려움을
함께 하며 다져온 팀웍은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한다.
역사는 오락적 소재
‘YMCA 야구단’이 독특한 점이 있다면, 휴먼코미디라는 장르에 시대극을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영화는 1900년대 초반의 종로 거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신문물과 구문물이 충돌하는 상황과 일제치하의 민족적 아픔을 보여준다. 특히, 인물들의 갈등은 시대상과 관련이 깊다.
글공부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호창(송강호)은 야구를 ‘상놈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전통 선비인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갈등한다. 자존심
센 양반 정병환(김일웅)은 머슴 출신인 마성한(이대연)과의 계층적 관계를 의식해 뻣뻣하게 군다. 야구단의 감독인 신여성 민정림(김혜수)은
투수 오대현(김주혁)과 함께 친일파 테러에 가담한다. 친일파의 아들인 류광태(황정민)는 오대현과 갈등을 겪는다. 인물들의 갈등은 곧 시대적
갈등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목적은 ‘역사’를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다. 당대의 아픔이나 풍속은 모두 영화적 오락을 위한 설정이다. 갈등은 뿌리도
얕고 격렬하지도 않다. 영화는 시대의 암울함보다는 신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겪는 에피소드와 풍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의상이나 전차 등 당대의
재현이 사실감을 더하기보다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에 가까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려한 기술, 밋밋한 드라마
세트, 소품, 의상으로 100년전의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살린 미술적 효과, 하늘로 숨어버리는 공 등을 표현하는 컴퓨터 그래픽 등은 탁월하다.
빛바랜 사진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갈색 톤의 영상미도 돋보인다. 젊고 신선한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송광호, 김혜수 등의 스타급
배우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다. ‘태양의 제국’ ‘간장선생’으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 배우 이브 마사토와 일본의
청춘스타 스즈키 카즈마의 출연도 멋진 보너스다.
‘YMCA 야구단’은 이처럼 흥행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 실패했다. 바로 드라마와 연출 감각.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쏟아내, 드라마가 핵심이 없고 구성이 산만한 것이 치명적인 문제다. 캐릭터도 밋밋하다. 상황이 쌓여가며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의 대사나 한 가지의 사건으로 인물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인물에 공감하지 못하면 드라마의 긴장감은 자연
떨어지게 된다.
영화는 최소한의 장르적 재미도 살리지 못했다. 야구를 배우는 단계의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얼렁뚱땅 넘어가고, 조선 최고의 야구단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도 생략됐다. 화해의 동기가 모호한 것도 아쉽다. ‘보여줄 것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는 감독 데뷔작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한계다. 이 작품은 갈등하고 화해하고 승리하는 장르의 관습에 충실한 뻔한 영화도 탄탄한 스토리와 사랑스러운 캐릭터, 유머를
겸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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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