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로 시작된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출간과 동시에 일약 화제가 되면서 전국적인 답사열풍을 몰고 온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다. 제1권이 120만부 판매를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국내편 세 권과 북한편 두 권까지 모두 260만부가량이 판매되어 우리 출판사상 흔치 않은 기록들을 갈아치운 ‘답사기’가 10년 만에 신간(제6권) ‘인생도처유상수’로 독자 곁에 돌아왔다.
신간의 부제인 ‘인생도처유상수’는 옛 시인의 시구 ‘인간도처유청산’에서 원용한 문구로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였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내가 인생도처유상수라고 느낀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액면 그대로 전하면서 답사기를 엮어가면, 굳이 조미료를 치며 요리하거나 멋지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현명한 독자들은 알아서 헤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랜 세월 답사를 다니다보니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탐구뿐 아니라,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며 혹은 남들이 모르는 깨달음을 얻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익히 ‘상수’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저자는 신간 전반에 걸쳐 그들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에피소드를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인다.
경복궁 근정전 앞뜰의 박석이 지닌 가치를 발견해낸 경복궁 관리소장, 일반인들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봄나물을 줄줄 꿰고 있는 무량사 사하촌 할머니들, 광주비엔날레 대상 수상작의 의미를 천연덕스럽게 해석해내는 촌로, 노비 출신의 비천한 신분으로 경회루의 대역사를 이뤄낸 박자청 등 학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험과 연륜에서의 상수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답사의 현장에서 만난 고수들과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서 두 배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이 책에는 저자가 4년간 문화재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광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광화문광장 시안을 마련해 정부 부처와 서울시를 바쁘게 오갔던 사연, 문화재 보수에 필요한 박석을 마련하기 위해 박석 채굴 광산을 찾아나섰던 이야기, 광화문 현판글씨에 얽힌 논란과 후일담, 종갓집 맏며느리 간담회 이야기, 개방금지를 능사로 아는 문화재 관리행정을 깨고 경회루 등을 개방한 일화, 전국의 아름다운 돌담길을 선정해 보수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전권들에서 보여준, 미술사학자로서 문화유산 보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그치는 입장이 아니라 직접 관리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바를 술회하기도 하고 여전히 아쉽고 앞으로 더 개선된 후일을 기약하는 회고의 고백도 담겨 있다.
신간에서는 서울의 상징 ‘경복궁’과 ‘광화문’에 얽힌 숨은 이야기, 양민학살로만 알려진 ‘거창’의 진면목, 사계절 아름다운 절집의 미학을 간직한 ‘선암사’, 고도 ‘부여’ 구석구석에서 발견하는 백제 미학의 정수, 인문정신이 빛나는 달성의 ‘도동서원’ 등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