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사는 것에 당당한 자부심을 갖자
최근 뉴스를 보면 우리 나라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땅은 비좁고 사람이 많다. 삶의 경쟁이
치열하고 직업이 부족하며 생활환경이 열악하다. 세계적인 평화 무드에서도 남북은 끊임없이 대치하고 있다. 교통체증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교육환경도
열악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한숨이 나온다. 내가 태어난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손에게는 도대체 이런 유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몇해전 보따리를
싸고 살기가 좋다는 미국과 캐나다를 찾았었다. 울창한 숲과 끝없이 펼쳐지는 대자연. 캐나다는 미국보다 기후가 좋았고 분위기가 푸근했으며
환경이 쾌적해 보였다.
특히 캐나다 뱅쿠버는 교육환경도 좋았다. 아름다운 항구와 강이 맞닿는 리버 사이드에 단풍과 꽃들이 어우러진 3층집에 살고 있는 교민 집에서
민박을 했다. 연세가 고희를 바라보는 그 교민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60년대에 이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녀들은 공부를 잘해 뱅쿠버의 명문대학 UBC를 졸업하고 사업을 하거나 재학중이었다. 집안에는 고급가구가 차있고 뜨락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했다. 생활은 부유한 편이었으나 워낙 심심해서 한국유학생 몇 명을 ‘홈 스테이(하숙)’시키고 있었다.
그 교민과 여행을 하고 아침에 공원에 나가 조깅도 하며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였다고 했다.
부득이 사기로 고소해 구속을 시켰는데 출감 기일이 다가오자 자녀들이 걱정되어 결국 이민 길에 올랐다고 했다.
이민 후 생활은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부인과 자녀들은 현지 생활에 잘 적응했고 세월은 흘러 백발이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고향의 향수에 젖는 것.
그 분의 말씀이 기억에 새롭다. 뱅쿠버에는 인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의 타운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인도 사람이요 중국 사람이지, 캐나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 자신도 영원히 한국 사람이지 캐나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젊다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크게 반성을 했다. 내가 ‘한국 사람이지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다’는 평범한 진리다. 우리의 숙명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남북이
대치되고 정치가 잘못되고 살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내 나라 내 민족, 내 식구의 일 아닌가.
어렵기 때문에 바로 내게 할 일이 있다는 말이다. 불가피하게 할 일이라면 즐겁고 기쁘게 하자. 스스로 팔 걷어 부치고 나서보자. 관행이
잘못 되어 있다면 고치고 도덕적으로 퇴락 되어 있다면 승화시켜 보자. 법과 제도가 잘못되어 있다면 개선될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라도
매만지고 다듬어 보자.
필자는 10여년전에 ‘은혜로운 서울의 모임’이란 자선단체를 창설해 자선모임을 계속해 왔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상황이 암울했던 기억이다.
대학에서는 학생시위가 끊이질 않았고 기름 값과 물가가 올라 생활이 어려웠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사고는 줄을 이었다. 항공기가 떨어지는가
하면 가스가 폭발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주행하던 성수대교가 가라앉고 바로 전날 취재차 들렸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눈물이 메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 시대 상황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고 그런 대형 사건이 벌어지니까 하느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것이겠지…
바로 그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서로 문제가 많다. 서로 시기질투를 하고 짐짓 화합을 못하는 것 같다. 남북문제가 그렇고 국정해법이 그러며
경제난제 해결이 그렇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보고 싶다. 국민 개개인이 다양한 개성과 품성을 지녔다. 어려운 여건을
대승적으로 보고 의기투합, 멋지게 매듭져 가는 저력을 발휘해보자.
고대경영학과/ 대학원경영학과 졸업/ 연세대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경제부차장)/ 한나라당 논산·금산지구당(현)/ 한국공공정책연구원장/ 시사뉴스주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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