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필승 코리아!” 그 함성을 정치판으로
경기장
스탠드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붉은 물결이다. 국민들은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붉은 색 티셔츠로 갈아입고, 12번 째 선수가 됐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한국민들이 붉은 옷을 입고 같은 노래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 데서 평화와 순수를 느꼈다”, “한국민들의 단결된 애국심이
경외스럽기까지 하다”고 자국으로 타전했다. 이란의 한 국가 관리는 한국의 애국심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며, 응원체험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붉은 악마’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응원문화를 창조하며, 정치인들이 그토록 떠드는 ‘국민대통합’을 이뤄냈다.
또 다른 카니발이 필요하다
대형 태극기의 등장에 세계는 또 놀라워했다. 지난 4월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첫 선을 보인 이 태극기는 폴란드전,
미국전에 이어 포르투갈전에도 선보였다.
이 태극기는 가로 60m, 세로 40m 크기로 무게는 1.5t이나 된다. 접어서 옮길 때는 장정 40명이 달라붙어야 될 정도다. 그 제작비만도
1,100만 원에 이른다. 게다가 모두 펼칠 때는 넓이가 2,400㎡에 달해 30평짜리 아파트 28채를 덮을 수 있다. 6,000여 좌석이
이 태극기에 가려진다. 즉 태극기 응원을 펼치기 위해서는 6,000여 명이 한 마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 대형 태극기와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함성에 상대팀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외국언론들은 “대체 어떻게 자신의 시야가 가려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응원에 몰두할 수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며 이를 거대한 집단주의와
민족주의의 발로로 풀이했다.
사회학자들도 세계화 속에 사라져가던 민족주의가 스포츠라는 새로운 형태를 통해 건전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는 ‘붉은 악마’의 응원이 불러온 잠깐 동안의 현상일 뿐이다.
이번 월드컵은 국민에게 있어 카니발의 도구요 장이다. 단지 좋아서 즐기는 것이다. 카니발은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재충전하는 좋은
기회다. 그간 쌓였던 절망과 불안과 패배의식이라는 짐을 이 축제의 장에서 벗어버리는 것이다.
방방 뛰고 소리지르는 ‘붉은 악마’의 응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함께 동참하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브라질의 한 응원단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자국 경기에 ‘붉은악마’의 응원구호를 따라하고, 응원방식을 흉내냈다. 일본의 몇몇 여성들은 ‘붉은 악마’의 응원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대다수의 우리나라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동참하는 것이다. 군중 속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응원을 함으로써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소외받았던 자신을 잊는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잃어버렸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카니발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국민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는 또 다른 카니발이 필요하다.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정치에서
국민들의 관심은 떠났다. 6·13 지방선거의 투표참여율은 48%로 역대 선거 중 가장 낮았다. 정치인들이 국가와 민족이라는 보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국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붉은 악마가 탄생할 수 있다. 신명나는 정치판, 카니발화된
대통령 선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