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과 우리 농촌의 앞날
필자처럼
60∼70년대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어렵게 살던 시절, 마늘은 시골에서 가장 요긴한 농가의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다. 헛간에 매달려 있던 마늘
몇 접을 손질해서 장에 가지고 가면 고등어며 새우젓, 멸치 등속의 맛있는 반찬과 먹거리를 장만할 수 있었다.
마늘에 대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제한조치가 2년 전인 2000년 6월에 해제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다. 중국이 수입제한조치에 반발해
그 보복으로 우리의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린 등 수입을 금지하겠다는 압박에 정부가 굴복한 것이다.
정부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미리 국민이나 마늘농가에 알리고 납득할만한 대책을 수립했어야 옳다. 은폐한 책임을 물어
당시 협상대표이던 한덕수 경제수석과 서규용 농림차관을 경질조치 했지만 두 사람을 문책한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50만 마늘재배농가서는
지금 마늘조각처럼 가슴이 찢겨져 있는 상태다.
국제통상회담이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환경보호협약에 따라 브라질이 밀림개발을, 인도네시아가 보르네오
정글 개발을 포기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마늘수입제한을 포기함으로써 통신기기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면 정부로서는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고
자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그간 정부가 1차산업을 한낱 하찮은 것으로 여겨왔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전두환 정부는 쿠테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싼값에 소를 키울 수 있게 해주겠다며 병든 소를 호주, 뉴질랜드에서 수입해 농민을
울렸고, 노태우 정부는 선진농업국을 건설한다며 농가부채를 가중시켰다. 김영삼 정부는 쌀시장 개방에 따른 민심수습책으로 농·어민 후계자 육성자금을
무차별 살포해 농어촌가구의 70∼80%를 부실채권자로 전락시켰다. 이로 인해 농촌은 살기 어려워졌고 하나둘씩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협상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수입반대는 세계무역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다. 타협이 필요하다. 만약 지난 1999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표를 의식해 무리하게 수입제한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타협의 절차를 거쳤다면 이번처럼 ‘파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역마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의 협상능력을 높이고 국내 농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여야 없이 힘을 모아야 한다.
현 체제로는 단언컨데 불가능하다. 외교부내에 통상교섭본부를 두는 체제로는 외교부와 해당부처간에 이해관계가 얽혀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번처럼
서로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할 수도 있다.
또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통상업무 담당자와 협상대표가 수시로 바뀌어 전문성도 떨어진다. 그러므로 위상이 격상된 독립적인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고 외풍에 시달리지 않는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과 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과 2004년 완료될 예정인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등 1차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협상들이 진행중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2의 마늘파동’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울러 1차산업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거듭나도록 생산과 유통, 판매 등에서의 기술력 확보와 구조조정 등에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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