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또 삼성특검이 기소한 삼성의 전현직 임직원 8명이 모두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16일 오후 열린 삼성 특검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 전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했다.
차명주식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로 판단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했다. 또 이학수 전 부회장의 2003년과 2004년도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5년, 벌금 740억원이 선고됐고, 2005∼2007년도 조세포탈에 대해서는 징역 2년6월에 집유 5년 및 벌금 600억원을 각각 선고됐다.
김인주 전 사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740억원을 선고, 최광해 전 전략지원팀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0억원을 각각 선고됐다.
이밖에 현명관, 유석렬 씨에 대해서는 무죄를, 김홍기, 박주원 씨에 대해서는 각각 무죄 또는 공소시효가 지난 면소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특검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의혹에 대해 "CB가 3자배정 방식으로 발행됐는지가 쟁점인데 주주배정이냐 3자배정이냐는 CB 인수권이 주주에게 실제 주어졌느냐의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사회 결의 및 주주통지 등 절차의 흠결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인수권을 줬다고 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우선 사채발행을 위한 주주통지절차와 이사회결의 등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또 헐값 발행이 됐다면 손해를 본 곳은 에버랜드라기보다는 삼성 계열사들이라"며 삼성 계열사에 대해서는 공소 자체가 제기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세범처벌법의 공소시효가 5년인 점을 감안해 2003년 이후의 포탈세액 456억원에 대해 유죄로 본 것이다.
재판을 마친 이건희 전 회장은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기자들의 집행유예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이런 것은 예상하는 것이 아니다"고 답하면서 "책임은 질 것이고, 지금부터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항소에 대해서는 "변호사들과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삼성특검팀은 이번 이 전 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항소할 뜻을 비췄다.
특검팀은 "말도 안되는 판결"이라며 1심 재판 결과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특검팀은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대부분의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되거나 공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법 상 항소심은 2개월 안에 선고를 하게 돼 있어 9월 중순에는 항소심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법원에서 진행되는 상고심도 2개월 안에 판단하게 돼 있어 사건은 11월 중순경에야 끝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특검팀은 이 전 회장에게 징역 7년과 벌금 3천500억원을 구형했었다.
또한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역사를 거스르는 실망스러운 판결'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경제개혁 연대 김상조 소장은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재벌의 과거에 대한 책임과 단절된 이번 판결은 역사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소장은 "기업 지배구조의 기본 원칙이 성립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번 사건은 과거를 일단락 짓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변곡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면서 "이날 판결은 과거의 문제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판결"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와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민·형사적 책임을 엄정하게 평가했어야 할 재판부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실망했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 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치른 비용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됐다" 말했다.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방송통신대학교 곽노현 교수 또한 "이번 판결은 특검의 부실수사와 재판부의 역사 인식 결여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곽 교수는 "삼성 특검팀이 지난 10일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에 대해 7년을 구형한 것 자체가 구형권을 포기한 것"이라면서 조준웅 특검팀이 애당초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의지가 없었음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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