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극일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재미있는 일치를 보여준다. 5년간 9번의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거쳐 85억의 거액을 붓고 2개월 이상 뉴질랜드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한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은 ‘도달불능점’을 향해 사투를 벌이는 영화 속 6인의 탐험대와 닮았다. 미지의 땅에 도전하는 등장인물처럼 영화는 충무로에 전례 없는 소재를 새로운 제작 방식으로 구현한다. 그것은 모험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모험은 영화의 대사처럼 “무슨 의미가 있는가?” 되묻게 한다. 캐릭터들의 자의식이 그렇듯 스토리는 분열되고, 감독은 감당하지 못할 주제를 최도형 대장(송강호)처럼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다. 그 결과 영화의 미학적 흐름은 대원들의 운명과 같은 길을 따라간다.
상반기 최고 블록버스터
‘남극일기’는 상반기 최고 기대작 중에서도 1순위라고 할 수 있는 대작이다. 남극 탐험이라는 소재만으로도 그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단편영화계의 스타인 임필성 감독의 데뷔작인데다 연기력만큼이나 작품 선택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송강호와 유지태의 주연작이다. 여기에 제작사 사이더스가 물량지원을 아끼지 않은 야심작이며 무엇보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영상은 압도적인 비주얼로 기대치를 높인다.
시놉시스도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영하 80도의 혹한,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는 빙하의 균열 ‘크레바스’, 뇌를 둔감하게 한다는 남극의 눈보라 ‘블리자드’, 낮과 밤이 6개월씩 계속되는 지옥 같은 남극을 6명의 탐험대원들이 횡단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남극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지점인 ‘도달불능점’ 정복이다. 대원들은 탐험 22일째 우연히 80년 전 영국탐험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이후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한 대원은 바이러스가 살지 않는 남극에서 감기증상을 앓다가 실종되고 어떤 대원은 블리자드에 빠져 죽는다. 통신장비들도 마비되고 식량도 바닥난 상황. 남은 대원들은 공포 속에서 대장에게 탐험 중단을 요청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최도형은 광기어린 의지로 대원들을 부추긴다.
관습적 파편들의 조각 맞추기
대략적인 스토리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만큼 전개가 모호하고 한편으로 정형화된 장르를 거부하고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이 영화가 ‘버티칼 리미트’같은 스펙타클 모험 어드벤처였으면 출연하지도 않았다”는 송강호의 말처럼 ‘남극일기’는 헐리우드 식 탐험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인간 내면의 공포와 이것들이 만들어지는 갈등에 주목한다. 남극은 모험과 의리의 공간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원형적 심리의 상징이다. 이 같은 접근법은 새롭다. 하지만 그 실현은 뜻밖에 진부하다.
상업적 문법과 예술적 문법 사이에서 적절히 줄타기를 하려던 감독은 오히려 둘 사이를 어정쩡하게 배회하다 추락한다. 캐릭터들은 B급 영화의 전형적 배분을 따르며 그 캐릭터들의 예정된 갈등은 예상할 수 있는 방식대로 진행된다. 사이사이 펼쳐지는 미스터리의 성격은 헐리우드 공포영화에서 이미 친근해진 것들이다. 인물 내면의 갈등 또한 더 없이 헐리우드 적이다. 관습적 파편들을 쓸어 담아 조각 맞추기를 하면서도, 감독은 파편들의 종합이 파편들을 넘어서기를, 혹은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무리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영화는 때로 육체적 자학으로 죄의식에서 해방되길 갈구하는 인간 심리에 대해, 욕망이라는 탐험의 또 다른 이름에 대해, 심지어 ‘무조건 되게 하라’던 아버지 세대의 무지막지한 산업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한 가지도 완성된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파편들만 모호하고 산만하게, 때로 이율배반적으로 남극 속을 배회한다.
송강호의 카리스마는 입증했지만 몰입할 수 없는 캐릭터를 납득시키는 것은 그 어떤 명배우도 어쩔 수 없는 ‘도달불능점’이다. ‘남극일기’는 슬픔이 담긴 인물의 눈동자를 클로우즈업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는 담겨있지 않다.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 있다면 아름다운 남극의 풍경도 탐험이 계속될수록 지긋지긋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황홀한 비주얼도 드라마의 긴장감이 떨어지면서 생명력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