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영화에서 남과 북은 화합 분위기가 한창이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이중간첩’ 등에서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개인’이 분단 상황의 화두였다면, 근래 개봉작 혹은 예정작인 ‘간 큰 가족’ ‘천군’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영화에서 이미 전체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개인은, ‘감동적인 화합’을 꿈꾼다. 주목할 것은 이 화합 메시지의 저변에는 반미를 바탕으로 한 세력 연합, 그리고 얄팍한 민족주의가 깔려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우리들만의 평화로 인한 힘의 확장이 아닐까, 하는 씁쓸함은 최근 영화 속 해빙 무드들을 반갑게만 볼 수 없게 한다.
회귀에 대한 꿈이 만들어낸 완벽한 낙원
영화는 철저한 판타지다. 판타지 공간은 6·25 전쟁에서 빗겨난 기적의 마을 ‘동막골’. 이 마을은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향수, 혹은 공동체적 세계관에 대한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노인은 공경 받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이웃은 서로를 형제같이 챙긴다. 감자 옥수수가 먹을 것의 전부지만 누구도 욕심내지 않으며, 방문객은 모두 손님으로 후한 대접을 받는다. 함께 밭을 갈고, 같이 나눠 먹는 공동체 생활은 불만도 갈등도 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너무 산골이라 군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마을에서 남과 북의 대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주민들은 총을 얼굴에 들이대도 막대로 얼굴을 치면서 인사하는 줄 알만큼 순박하다.
어느날 동막골에 외부인들이 모여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합군 병사 스미스가 비행기 추락으로 마을에 흘러들어오고, 낙오한 인민군 중대장 리수화 일행에 이어 탈영한 국군 표현철 일행까지 동막골에 모이게 된다. 평화롭던 동막골은 긴장감이 극에 달하지만, 이 완벽한 낙원에 그 누가 젖어들지 않을 수 있을까. 군인들은 자신의 소속을 버리고, 군복을 벗고 개인 대 개인으로 정을 통하기 시작한다. 동막골의 절대 순수에 반한 그들은 급기야 마을에 위협이 가해지자 ‘동막골군’으로 자처하고 나선다. 남도 북도 아닌, 오직 동막골을 위해 희생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피상적 희망, 박제 같은 캐릭터
이 영화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쉬울 듯 하다. 여기까지 시놉을 듣고 ‘그런 곳이 있다면 가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든다면 동막골 입장에 적격자다. 인간에 대한 상투적 희망, 박제 같은 캐릭터 등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동막골 판타지는 웃고 울한 장치들을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기승전결 드라마 구성과 착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웃음, 그리고 민족애의 자극 등 감정이입을 유도할만한 요소들은 고루 갖췄다.
대중의 정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반영한 전략적인 상업 영화인 ‘웰컴 투 동막골’은 전반부 코미디에 후반부 감동이라는 충무로의 흥행 공식에 최근 트렌드인 민족주의 감성과 휴머니즘을 잘 요리해 섞었다. 흥행에 대한 노하우를 확보한 장진 사단의 기술과 감각이 잘 드러난 일면이라 하겠다.
하지만, 동막골에 대해 ‘그런 마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냐?’는 생각부터 든다면 이 영화에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에 제공하는 가상의 세계에 닭살 돋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의 전략들이 가식적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영화는 ‘동막골 : 외세 침범을 받기 전의 평화로운 공동체, 인간적 절대 가치가 지켜지는 공간. ↔ 미군, 폭력’ ‘백치 소녀 여일 : 순수함의 극단, 동막골을 상징’ 같은 참고서식 정리가 제격일 정도로 도식적이라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알레고리는 노골적이며, 캐릭터는 민망할 정도로 작위적이다.
휴머니즘으로 포장한 성찰 없는 민족주의
‘웰컴 투 동막골’의 점층적 구성은 잘 짜여진 한 편의 이야기를 추구하던 90년대 이전의 드라마 같다. 주제 또한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을 버리기 힘들다. 한국전쟁 중에 낙오된 남북 군인이 만나 인간적 정을 나누고 그들이 공동의 적과 대항해 함께 싸운다는 스토리는 지나치게 낡았다. 이 이야기가 전쟁 후 세대의 머릿속에서 나온 피상적 전개라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적당히 귀엽게 뻗친 머리에 꽃을 꽂은 백치 소녀의 이미지나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주민들의 순수함이란 현대 도시인들의 철없는 환상 같아 거북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장치들이 흥행 면에서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흥행 전략적인 이 영화가 피상적 감상에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직설적이다. 형제는 용감하고 적은 악랄하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세련된 포장들을 여러 차례 거쳤지만, 미군이 포탄에 맞아 죽는 모습을 통쾌하게 묘사한 장면 등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영화의 메시지는 인간 사이에 ‘편이 없다’는 휴머니즘이 아니라 ‘우리 편이 누군가’를 인식시키는 감상적 민족주의의 단계에 머문다. 궁극적으로 착한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힘이 없거나 우리 편이면 착한 사람인 논리다.
상업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남북관계를 조망하는 영화들에게서 읽혀지는 이 같은 위험한 징후들은 상업영화를 온전히 유쾌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는게 문제다. ‘적도 친구가 되는 곳’은 행복한 판타지지만, 광고 문구와는 다르게 ‘적이 있어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 영화적 진실로 구현되고 있으니 씁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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