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11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주)디유티코리아 정용채(55세) 대표를 선정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 쉰아홉 번째 수상자 정용채 대표는 지칠 줄 모르는 집념으로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던 우레탄발포기용 믹싱헤드의 국산화에 성공, 높은 품질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역수출을 이뤄낸 주인공이다.
1956년 충북 제천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대표는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들고, 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러한 그의 성격은 공업고등학교로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된다.
1971년 서울 소재 한양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한 그는 처음으로 다양한 기계와 기능훈련을 경험하면서 이곳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고교 졸업 후 한 단계 높은 기술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하여 한국정밀기기센터(현, 경기과학기술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이곳에서 그의 기능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고 정밀측정산업기사를 1년 만에 취득하게 된다.
이후 방위산업체인 제일정밀공업(주)[현, 퍼스텍(주)]에 입사하면서 정 대표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생산 공정 관리부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능과 기술을 실전에서 익히게 된다.
“업무 특성상 현장 실전 경험은 물론 이론적 배경 지식도 탄탄해야 원활한 업무 수행이 가능했습니다. 초년병 시절, 낮에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실전경험을 익혔고, 밤에는 독학으로 기술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회사 내에서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었더군요.”
바로 이때가 생산 기능직과 기술 개발직의 중간에서 기능과 기술을 모두 섭렵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현재의 정용채 대표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기술부로 승진 발령을 받고 기술개발은 물론 원가 계산, 기술 영업 등의 확장된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폭넓은 시야와 경험을 쌓게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간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대표는 지인 3명과 함께 항공기부품 제작 치공구(治工具)를 생산하는 한국치공구(주)를 설립하게 되고 기술 개발 및 생산을 총괄 담당하는 상무이사로 회사 안정화와 성장을 위해 매진하게 된다.
이후 회사가 안정화되자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사의를 표명했으나 그의 역량이 필요했던 회사의 만류로 마지막 3년 동안은 기술 고문직을 겸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창업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내 1992년 정 대표는 홀로서기에 나서 (주)디유티코리아를 설립했다. 아내와 직원 1명으로 단출하게 꾸려진 회사는 베어링 부품 생산용 금형 생산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미약하게 시작한 회사는 폴리우레탄발포기 사업에 뛰어들며 비약적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회사는 현상유지는 할 수 있었지만 결정적인 성장동력이 필요했던 정 대표는 수천만원대의 수입산이 점령하고 있던 폴리우레탄발포기의 핵심부품인 믹싱헤드 개발에서 답을 찾았다.
그 동안 축적된 기술력과 집념 어린 연구개발 노력으로 결국 국산화에 성공하게 되었고 (주)디유티코리아는 폴리우레탄고압믹싱헤드 제조 부문에서 세계 3대 메이커로 우뚝 서게 된다.
올해는 매출액 4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매출의 70% 이상이 일본, 독일, 미국, 중국, 인도를 포함한 전 세계 30여개국에 대한 수출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디유티코리아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목표로 연구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기술과 경험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명품을 개발한 정용채대표, 현장(기능)을 알고 같이 호흡해야 기술 개발도 가능하고 명품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장(기능)을 알아야 기술 개발도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기에 현장의 니즈(needs)와 애로 사항이 없는지 체크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진정한 명품 기술은 디테일이 완벽히 구현될 수 있도록 뒷받침 될 때 가능한 것이고 이는 현장(기능)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정대표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