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최근 들어 가계 저축률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통상 낮은 금리에서는 이자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저축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반대로 통장에 돈을 더 넣어두고 있는 것이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OECD 평균치인 5%에도 못미치는 3~4%에 머물면서 세계 '꼴지' 수준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해 가계저축률이 10년 만에 6%대로 올라서며 눈에 띄는 증가세를 나타냈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처분소득에서 실제 소비지출을 제외한 가계순저축률은 6.1%(56조1000억원)로 2013년(4.9%)보다 1.2%p 올라갔다. 가계저축률이 5% 밑으로 떨어진 2001년 이후 회복세를 보였던 적은 2004년(8.4%)과 2005년(6.5%)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하지만 저축률이 늘었다고 해서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저축률이 증가한 것은 가계에 여윳돈이 많이 늘었난 것이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진한 경제 상황 속에서 소득 고갈에 대한 불안감에 따른 예비적 저축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분석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은 "최근 가계저축이 늘어난 것은 경제 성장과 고용, 임금 등에 대한 불안심리에 따른 예비적 저축 증가에 일부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위축 및 내수회복 지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소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낮은 금리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탓에 원금상환 부담이 증가한 것도 저축이 늘어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4년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은 21.5%로 전년보다 2.4%p 상승했다. 가계에서 쓸 수 있는 돈 중에 빚을 갚는데 써야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은 27.2%로 다른 소득 분위 계층보다도 높았다. 빚 상환 부담이 다른 소득 계층보다 더 크다는 얘기다.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이창선 연구위원은 '가계 흑자 계속되지만 소비 늘릴 여유는 없다'는 보고서에서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물면서 이자 부담은 소폭 증가한 대신 원금 상환 부담은 크게 늘어났다"며 "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으로 저축을 늘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축으로 비축해 둔 자금이 실제 소비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저축 증가→부채 상환→소비 회복→투자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저축은 늘었지만 가계의 부채상환이라는 벽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는 셈이다.
이창선 연구위원은 "원금상환 부담 증가, 전월세 보증금 증가, 노후대비 저축의 필요성 등 예산제약 요인이 적지 않아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하는 압력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소비 회복을 통한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늘어난 저축을 소비로까지 유도하려면 빚 상환 부담에 차이가 있는 소득 계층별로 맞춤형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임 연구위원은 "정부는 경기회복세 강화를 위해 민간 불안심리를 완화해야 한다"며 "동시에 저소득층에게는 저축을 장려하지만 고소득층에 대해선 소비를 촉진하는 등 소득 계층별 맞춤형 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