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벼랑 끝에 내몰렸던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 등 국민에 큰 신세를 졌고, '장밋빛 공약'도 쏟아냈다. 적지 않은 반(反)대기업 정서도 확인한 만큼 이를 해소하고 적극적 주주 친화경영을 펼쳐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됐다.
삼성이 이를 어떻게 갚고, 또 어떻게 실천에 옮길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지난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0%에 육박하는 찬성표를 얻어 합병안을 통과시켰다.
압승을 통해 큰 고비는 넘겼지만 '뉴삼성물산'이 떠안게 된 부담은 실로 적지 않다. 엘리엇과의 대결 과정에서 모든 카드를 내보이며 전력 투구했기 때문에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는 탓이다.
지난 약 두달여 과정을 돌이켜 보면 숙제의 윤곽이 분명해진다. 지난 5월26일 제일모직과의 합병 결의를 발표한 삼성물산은 엘리엇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며 대중 앞에 등장한 엘리엇은 합병비율을 문제 삼아 공식적으로 합병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방심하고 있던 삼성물산은 엘리엇의 파상공세에 휘청거렸다. 합병에 대한 확신은 불안감으로 바뀌었고 소액주주들까지 엘리엇을 지지하고 나서며 상황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물산은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KCC에 자사주 899만주(5.96%)를 매각하며 우호지분을 늘렸고 법정 공방에 필사적으로 임했다.
지분 11.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승부가 갈렸지만 삼성물산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대대적인 홍보전과 1000주 이상을 지닌 소액주주들을 일일이 찾아가 기업의 미래 발전을 호소하는 애국심 마케팅을 통해 굳히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주총에서 69.53%라는 기대 이상의 찬성률을 기록하며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삼성물산은 엘리엇과의 대결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각종 '공약'을 내걸었다. 표대결에서 원했던 결과를 얻었으니 이제 그 빚을 갚을 차례다.
삼성물산은 합병 후 출범 할 '뉴 삼성물산'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2020년 기준 매출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은 물론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바이오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 앞으로 5년 뒤인 2020년까지 회사 전체 이익의 18%(7200억원)를 창출해내겠다고 자신했다.
미래가치는 제시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했다.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던 이유다.
삼성물산의 한 주주는 "기존 바이오 업계 대기업들도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뉴삼성물산이 얼마나 사업을 성공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미래가치를 긍정적인 쪽으로만 부풀려서 얘기하면 추후 주주가치를 심하게 훼손시킬 수도 있다"고 꼬집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주주들이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삼성그룹을 지켜내야 한다'며 애국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삼성물산이 내세운 미래가치에 대한 믿음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합병회사가 자금력을 기반으로 신사업 영역에 활발히 투자할 것으로 예상돼 향후 바이오제약 사업의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주친화정책도 지켜야 할 약속 중 하나다. 삼성은 합병법인이 출범할 경우 배당성향을 높이고 거버넌스 위원회, 사회적책임(CSR) 위원회 등을 신설하겠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은 합병 전 참석한 간담회에서 "합병법인은 30% 수준의 배당성향을 지향한다"며 "회사 성장을 위한 투자기회, 사업성과 등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상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사회 독립운영 강화를 위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거버넌스 위원회를 신설해 특수관계인 거래, 인수·합병 등 주주의 권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심의하게 할 것"이라며 "외부 전문가와 사내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CSR 전담조직도 만들어 글로벌 기업의 주주·시장·사회에 기여한 사례를 연구해 회사정책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합병의 열쇠로 꼽혔던 소액주주들은 삼성의 진심과 추후 변화를 믿고 소중한 찬성표를 던졌다.
주총에 참석한 한 소액주주는 "그동안 삼성그룹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지지해 왔는데 이번 합병 과정에서 삼성이 보여준 태도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며 "주주권리를 묵살하려는 태도를 바꿀 것을 전제로 이번 합병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주주를 위하겠다던 삼성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최치훈 삼성물산(건설부문) 사장은 주총에서 합병안이 승인된 뒤 기자들과 만나 "우선 저희 회사를 믿어주신 주주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반대를 하신 분들도 기업설명회(IR)를 진행하면서 많이 만났는데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들을 많이 얘기하셨다. 그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앞으로 그런 것들을 고치면서 잘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주총이 끝난 후 CEO 입장 자료를 내 "양사의 사업적 역량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회사 가치를 높여 주주들의 기대에 보답 하겠다"며 "이번 합병을 계기로 더욱 주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벌 3세 승계에 비판적인 국민들의 반(反)대기업 정서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한 소액주주는 주총에서 "엘리엇이 아니라 국내기관이 (합병반대를 이끌었다면) 동조했을 것"이라는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얼리엇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우리 사회 대기업과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반감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라며 "삼성이 투명경영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하면서 국민의 반감을 해소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