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이적행위'라고 표현하거나 민족문제연구소를 '친북단체'로 표현한 보수 시민단체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3부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임 소장 등이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이 이적행위라는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며 보수 시민 및 언론단체 대표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적행위' 표현과 친북단체 선정에 따른 명예훼손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5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해 3000여명의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했는데, 신혜식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독립신문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친일청산작업은 친북·공산세력의 대한민국 전복 시도이자 공산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이적행위”라는 제3자의 시평을 실었다.
또 보수 시민단체인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서정갑 씨 등은 같은 해 12월 친북인사와 친북단체를 선정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를 포함시키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1심은 ‘이적행위’ 표현 및 친북단체 선정, 시위로 인한 명예훼손을 모두 인정해 총 6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신혜식 씨 등이 시위를 벌이면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을 '빨갱이'라고 인신공격과 모욕을 해 명예를 훼손한 부분만 불법으로 봐 민족문제연구소에 1700여 만원만 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좌와 우의 이념문제,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앞세운 이념과 민족을 앞세운 통일 등의 문제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쟁점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역시 보장돼야 한다"며 "'친북'이라는 말이 이젠 실정법 위반에 따른 처벌의 위험성을 내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상황에서 '친북'이라는 말이 더 이상 실정법 위반에 따른 처벌의 위험성을 내포하거나 반사회적 성향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적행위'라는 표현은 건국과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인사들까지 친일인사로 규정돼 북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주관적 평가를 과장해 비유한 표현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들이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을 '패륜아', '정치모리배', '빨갱이'라고 비난한 것은 의견 표명의 한계를 넘어선 불법행위"라면서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이 공산화 숙청과 주체사상을 옹호한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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