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만 안 들었지 날 강도다.” “정부는 사기꾼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5일 한국납세자연맹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반대 촛불집회에는 15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지난 주 첫 집회 때 보다 참석자수가 1주일만에 2배 늘었다. 국민적 분노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온라인에는 ‘국민연금 대정부소송 카페’ ‘안티 국민연금’ ‘국민연금반대운동본부’ 등 국민연금 정책에 저항하는 사이트가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안티 사이트와 토론방은 물론, 국민연금관리공단 청와대 등 국가기관 사이트 게시판에도 비난 글이 쉴새없이 올라오고 있다. 한 방송사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연금 폐지를 지지하는 의견이 92%에 달했다. 정부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분노의 불길은 좀체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서민 등 쳐먹는 정부 물러가라”
국민연금관리공단 민원센터에도 가입자들의 항의가 몰려들고 있다. 납부금액을 낮춰달라는 수준이 아니라 탈퇴하게 해 달라, 지금까지 납부한 금액을 돌려달라는 등 요구 수위도 높다.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내용의 스티커가 유포되고 있으며, 공단 간부들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수급권 제한 문제에 대해 헌법 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분노의 불씨가 인터넷에서 시작 확산된 만큼, 폐지 운동은 온라인에서 더욱 거세다. 네이버 토론방에 ‘dachik’라는 아이디의 안티즌은 “국민연금은 탐관오리가 국민들 피 빨아먹던 삼정 중에서 가장 문란했던 환곡제와 같다”며, “하루속히 그 쓰레기 같은 연금제도 집어치우고 국민들 착취하지 마라… 무능하고 한심한 관료놈들과 더러운 정치인놈들 먹여 살리기 위해 돈 벌어 세금 갖다 바치는 것은 정말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divinuad’는 “국민연금은 정권 창출을 위한 노년층의 표 공략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며 정치불신과 세대간의 갈등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사이트 민원게시판에는 박정민 씨는 “국민연금 안 내면 강제 차압 들어가니 국민들은 사체 써서 연금 내야 한다. 도대체 국민을 몇 번 죽이는가”라며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했다. 김수호 씨는 “가난한 사람들 등쳐먹는 정부가 과연 좋은 정부인가? 돈 받았으면 현명하게 국민들에게 돌려줄 생각을 해야지. 여기저기 투자해서 날려먹고… 배 두드리며 돈 쓰고 돈 다 쓰면 연금 올려 채워놓고”라며 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 내용을 영화 '이것이 법이다' 포스터에 담았다. | 영화 '투모로우'를 이용해 국민연금 제도의 허구성을 꼬집고 있다. | 영화 '옹박' 포스터에 '국민연금의 실체 피박' 이라는 문구를 만들어 합성했다. |
“당신의 상식은 잊으세요”
영화 '친구' 의 한 장면에 말풍선을 넣어 국민연금을 강제로 징수하는 정부를 비난했다. |
국민연금을 풍자하는 패러디 작품들도 넘쳐나고 있다. LG 텔레콤의 광고를 패러디한 동영상에는 한 시민이 등장해 “저 솔직히 국민연금 왜 내는지 모르겠어요. 낸다고 해서 노후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낸 연금이 어디에 쓰여지는 지도 모르고. 저 안내문 하나 받아본 적 없거든요.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국민의 선택권도 없고 국민에 대한 동의도 없이 도대체…”라고 토로하면 공단 직원을 짐작하게 하는 남자가 등장해 원본 CF의 배용준을 흉내내며 말한다. “당신의 상식을 잊으세요. 그리고 하라면 하세요.”
영화 ‘친구’를 합성한 사진에는 ‘서민탄압! 삥뜯기 프로젝트 국민연금 강제징수’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유오성 말풍선에는 “난 월급이 100만원이야. 생활비 때문에 결혼하기도 어려워… 날 봐서라도 연금폐지하자. 불쌍하지도 않아”라고 애원하면, 장동건 말풍선에는 “어디서 개기노 내를 물로보나? 요즘 다들 어렵다 아이가? 내라카믄 내믄 되잖아”라며 협박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비트박스를 잘 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북치기 박치기’로 화제를 모은 SK 텔레콤의 TTL 광고를 이용한 패러디도 눈길을 끈다. 래퍼 후니훈이 ‘국민연금을 잘 걷으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라고 말한다. 그 두 가지는 바로 ‘직장인 등치기, 대국민 뻥치기.’
“당장 오늘 먹고살기도 힘들다”
SK 텔레콤 TTL 광고를 국민연금에 대입시켜 패러디했다. |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이처럼 극에 달한 데에는 어려운 서민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당장 오늘 먹고살기도 힘든데 내일을 기약하라니 어이가 없다’는 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심정이다. 네이버 토론방에 ‘dachik’는 “불황이라 장사도 안 되는데 세금 독촉에 연금이다 보험이다 강제로 가입시켜 돈을 갈취해 가는 개 같은 나라에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갈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절망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를 초기 정착시키기 위해 온갖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저부담 고급여’의 환상을 강조하며 국민연금이 민영보험보다 몇 배 더 유리한 투자수단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기금고갈 우려가 제기됐고 정부는 납세금을 올리고 지급률을 내리는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 불만을 키웠다. 국민들이 사기 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안티즌 ‘gogo2133’는 “연금 처음 시행할 당시 소득의 3% 내고 급여의 70%를 60세 되면 준다더니 지금은 어떤가. 더 이상 국민들 우롱하지 말고 폐지해라”고 주장했다.
장기간의 검토와 공청회 등을 통한 여론 수렴의 과정 없이 행정편의주의적으로 국민연금을 시행하고 이끌어온 당국의 잘못이 크다. 초기 정착시키겠다는 과욕으로 자금액수만 늘릴 계획만 세웠지 합리적인 토대를 만들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국민연금반대 운동본부 사이트 게시판에 한 안티즌은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며 “설명도 핑계도 다 싫다”고 말했다. 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의 골을 얼마나 깊게 하는지 보여준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