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정치’
원시시대에도 정치는 있었다. 몇사람이라도 모여서 살면 거기에는 우두머리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었다. 부족사회·씨족사회에도 족장은 있었다. 대대로 떠받드는 추장은 있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왕도되고 황제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것인데 북의 김정일처럼 공화정치임을 표방하면서도 수령의 자리를 계승하는 그런 나라는 없다. 일종의 세습제가 아닌가. 어쨌건 그가 북의 절대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그는 추장이요,족장이요 왕이요 황제요 대통령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아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이 있다면 그가 김정일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도 정치가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있고 그가 권력의 정상에 있다. 대통령 중심제의 나라이기 때문에 때로는 왕이나 황제노릇을 할수도 있다. 대체로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때에는 그런 절대권을 행사할 법적 권한이 부여되어 있지만 민주사회에서 꼭 한가지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대통령 자리의 세습이다. 생각해보라.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이강석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면 국민이 가만있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박지만을. 김영삼 대통령이 김현철을 대통령을 만들고자 획책했다면 나라가 흔들흔들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김대중 대통령이 김홍일을 차기 대권의 인수자로 점찍어 놓고 있다면, 남북정상회담에는 별 지장이 없겠지만(남의 대한민국이 자기를 따라온다고 북의 김정일을 받고 회심의 미소를 띠울지도 모를 일이니까)대한민국은 하루 아침에 뒤집히고 말것이 분명하다.
권력이 누구손에 있는가. 이것은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주일남짓 멕시코라는 인구1억에 그 영토가 미국본토만은 하다는 이 나라를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나라 정치 풍토를 감각적으로나마 느낄 수는 있다고 믿는다. 멕시코가 장차 크게 유망한 나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하도 오랫동안 지도자를 잘못만나 국민이 갈바를 모르고 헤매이다 이제는 지쳐서 무사안일주의에 빠진것 같다. 이들에게는 한국인 같은 독하고 부지런한 면이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게으른 국민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권력이 국민의 손에 있어야 발전이 가능한데 이 나라의 권력은 부족장의 수중에 있었는데 아즈텍이 부분적으로나마 천하통일하고 반대하는 부족들을 신들에게 인신공양하는 형식으로 단번에 2만명의 심장도 도려내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피라밋으로 상징되는 아즈텍의 문화는 16세기에 대거 침입한 스페인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혀 흔적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미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이 국민이 어찌하면 아직도 GDP $4.566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살리나스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주효하여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정권도 내부의 부정부패와 음모·살인 등으로 이어져 불행하게 끝난 셈이다. 살리나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에 틀림없이 당선된다고 국민이 믿고 있던 후보가 경호원에 의해 암살 당하였고 당황한 여당이던 PRI(제도개혁당)이 졸지에 내세운 후보가 현 대통령 에르네스토세디오(Ernesto sedillo)였다.
사실 정계의 흑막은 알길이 없지만 94년의 여당 후보가 유세중 정권내부가 부패했으므로 손을 봐야 한다는 돌출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고 이에 겁을 먹고 격분한 살리나스 대통령 측근이 자기들이 내세운 후보를 자기들의 손으로 해치웠다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세디오는 예일대학 출신인데 자기는 어느정치인에게도 신세진 바가 없으므로 과감하게 정권을 운영하여 금년 대선에서도 공명선거를 다짐하고 실현하여 야당이던 국민행동당의 폭스 (Vincente Fox)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그는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멕시코는 70여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하였으니 그것만도 자랑스럽다할 것이다. 하바드 출신으로 한때 남미 전역의 코카콜라회사를 총지휘한 실물경제의 경험도 있는 그가 과연 오래 시달린 가난한 서민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을것인가 문제는 심각하다. 노조와 기업간의 절충, 범죄와의 전쟁, 경찰의 부패 근절-대통령 폭스 앞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멕시코는 다 좋은데 치안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이 곳의 교포들은 입을 모아 걱정한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서 잘사는 사람들은 인구의 10%밖에 안되는데 나머지 90%는 아직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나라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뜨이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9척 장신의 시대적 영웅 폭스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을 기원하면서, 과달라하라에서.
김동길 박사 http://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