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정치가 있는가?
천재지변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기 어려운 것이다. 며칠전에 페루에 지진이 강파하여 집도 많이 쓰러지고 사람도 많이 죽었다. 그 지진으로 인해 깔려있는 사람들은 끄집어 내려고 노력을 하지만 살아서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상자는 부지기수라고 한다. 최근에 있었던 중국의 홍수를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한동안 한반도에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 농민들의 속을 있는대로 태웠는데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는 것을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드는 재해도 적지 않다. 부실공사 때문에 성수대교의 상판이 무너져 내린다던가 허술한 안전장치 때문에 연천에 있었던 마포의 가스폭발사고 같은 것은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에 인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하지 않은가. 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의 놀라움을. 무리한 공사 때문에 그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갔던 어른, 아이가 500여명이나 목숨을 잃었지 않은가. 순전히 시공자의 실수였다. 상당한 액수의 보상금이 지급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올지는 만무다.
요새 우리나라의 정치도 마찬가지여서 정치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리를 놓고 빌딩을 세우는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들어나기 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물론 정치에도 국가백년지기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는 당장 국민의 아픔을 싸매고 국민의 걱정을 덮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정치판을 보면서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치가 철저하게 있다면 오히려 국민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한두가지 예만 들어보자. 현 정권이 의료보험의 통합을 무리하게 강행하지 않았던들 국민의 의료보험비는 지금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만일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하지 않았던들 한국의 의료계가 오늘처럼 혼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는 의사대로 체면을 잃고 약사는 약사대로 곤경에 빠졌으며 환자는 환자대로 죽을지경이 되었다고나 할까.
김대중 대통령은 다른 실수에 대하여는 그토록 심한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의약분업의 강요로 빚어진 험난한 사태에 대하여는 전에 없이 정중한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속된 말로 하자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식의 사과였는데 김 대통령은 덧붙여 “아무문제가 없다고 해서 밀어부친 것인데”라는 내용의 부연 설명이었다. 그렇게 국민앞에 사과를 했으면 잘못된 그 길로 가자고 강력하게 권면한 자들을 목을 치거나 혼을 내야 마땅한 일인데 처벌도 커녕 문책받아야 할 사람들을 다시 등용하는 것을 보고 대통령은 정치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국민에게 몇조나 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끼치고도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정치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은 김대중대통령이 영도하는 국민의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북의 인민공화국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과 대치하고 있는 별개의 나라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으면 안된다. 6·25의 쓰라린 경험도 없는 바 아니거니와 북이 줄곧 표방하는 남북통일의 유일한 방안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다. 인민공화국은 그런 국가적 목표를 한번도 수령한 일이 없고 기회만 있으면 무력을 가지고 적화통일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 작년 6월15일에 있었던 남북공동성명은 그 내용자체에 새로운 것은 없지만 남북간의 긴장을 일시적으로나마 완화시켜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뒤 1년이 지났지만 북은 남쪽의 대한민국과 공존하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해야할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북은 제 마음대로 해치우고 한 때 한반도의 유일무이의 정부이던 대한민국은 그 앞에 굽실거려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정치가 없었으면 오히려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김대중대통령은 왜 화해니 협력이니 하며 대한민국의 국민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가.
철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사)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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