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김종필-박근혜-정몽준
4자연대 과연 가능한가?
요즘들어
부쩍 민주당 이인제 의원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 간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정치권에 이른바 ‘IJP연대’가 가시화하고 있다. 또 이인제 의원과
한국미래연합의 박근혜 대표가 곧 만날 예정으로 돼 있어, 정치권에 이른바 이인제-김종필-박근혜-정몽준의 ‘4자연대’ 가능성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지난 5월 3일 골프회동을 통해 6.13지방선거에서의 연대 메시지를 주고받은 이인제-김종필 두 사람은 14일 저녁엔 부부동반으로 만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인제 의원은 특히 16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자민련 구천서 충북도지사 후보 추대대회에 김종필 총재와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자민련은 이 의원이 청주대회에 참석하자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자민련은 이 의원을 통한 민주당과의 지방선거 연대는 어디까지나 ‘한시적 공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 핵심당직자는 “이 의원과
JP가 향후 정계개편 때 행보를 같이 할 수 있는 이념적·정서적 기반을 넓혀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과 자민련과의
관계는 또다른 차원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JP도 지난 14일 불교방송에 출연해 “(지방선거에서) 양당의 협력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그러나 (대선공조는) 정치상황의 진행을 보아가며
선택적으로 숙고할 문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가운데 내각제에 동의하는 쪽과 연대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한편 한국미래연합의 박근혜 창당준비위원장은 지난 15일 SBS 라디오 프로에 출연, “내가 추진하는 당의 정강정책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미래연합은 5월17일 공식 창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미래연합은 아직은 ‘박근혜의 당’이다. 미래연합은 이날 창당대회에서 당헌과 대표연설을
통해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 참여 방침을 분명히 했지만, 그 향배는 박근혜 대표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연합의 박 대표는 대선 예비후보들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10%를 넘는 지지도를 기록해 왔다. 이회창, 노무현 후보에 이어 세번째
대선주자로 꼽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박 대표 개인의 파괴력은 아직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양자구도가 확고하고, 제3당인 자민련조차 의원탈당
사태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상태다. 정당으로서의 미래연합이 현재의 정국구도에 끼어들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따라서 ‘대표만 있고 의원은 없는’ 미래연합의 딜레마는 박 대표가 다른 정당 및 정치세력과의 합종연횡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이인제-김종필-박근혜-정몽준’의 연대설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미래연합이 당장 정치권의 합종연횡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박 대표가 최근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단독면담을 성사시킨 것처럼
자신의 독자행보를 통해 미래연합의 ‘정치력’을 최대한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미래연합의 한 핵심관계자는 “누구든 만날 수 있지만, 특히 정당과 통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낸다는
것이 변함없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미래연합이 당헌을 통해 대선 100일 전까지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지방선거 이후 세를 규합해 9월께 명실상부한 ‘제3후보’를 뽑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결국 박 대표는 지방선거 이후 양당 구도에 안착하지 못한 정치인들을 미래연합이라는 광주리에 담는 데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
담길 정치세력이 누가 될지, 그 파괴력은 얼마나 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요즘들어 민주당 이인제 의원의 행보는 정작 다른 방향으로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민경선에서 패색이 짙던 당시만 해도 “지방선거
기간 외국에 나가 있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던 이 의원은 최근 민주당과 자민련의원들을 두루 만나면서,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도 깊숙이
관여할 의사를 표시해, 그 배경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이 의원의 행보가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정체와 연관돼 있으며, 향후 다가올 정계개편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 아래
이루어지는 ‘노무현 역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의원은 당초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돕는 행보를 하지 않기로 했으나,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만난 뒤부터는 자민련의 충청권 후보를
지원하는 소극적 행보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그뒤 민주당의 진념 경기지사 후보,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의 고문 역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민주당내 위상정립에 나섰다. 이
의원은 특히 지난 5월17일 민주당 이해찬, 김명섭, 김성호 의원 등을 만나 서울시장 선거를 적극 돕겠다고 말하면서 “유세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 의원을 만난 민주당의 한 의원은 “노무현 후보가 부산 등 영남지역 선거에 사활을 걸겠다고 약속한 만큼,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자신이 충청과 수도권 지방선거에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을 한 것 같다"면서 “‘영남에서 패한 노무현, 수도권과
충청에서 승리한 이인제’의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인제 의원 끌어오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충청권도
문제지만, 특히 이번 지방선거의 관건인 수도권 지역에서의 충청표 향배가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인 이해찬 의원은 평소 “서울·경기 지역의 경우 충청 출신 유권자들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5월23일에 있었던 소속의원 워크숍에서 “이 의원에게 선대위원장 직을 맡기고 나는 선대위 고문으로 물러날 자세가 돼
있다”며 적극적인 구애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이 의원의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태도는 냉담하다. 이 의원은 당 차원의 공식적인 지방선거 지원 요청은 거부하면서 대신 ‘개인적
차원’에서만 지원을 하겠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이 의원의 움직임이 ‘4자연대’를 향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의원은 곧 미래연합의 박근혜 대표를 만날 예정이다. 이 의원이 요청하고 박 대표가 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단독으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의원은 5월23일 “박 대표가 평양에 다녀온 얘기를 주로 들을 생각이지만, 선거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26일 수원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친선게임을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과 함께 관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이인제-김종필-박근혜-정몽준 4자연대의 가능성을 본격 타진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 의원의 최근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인제-김종필-박근혜-정몽준’이라는 4자연대보다는 더욱 큰 그림의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당장 4자연대의 가능성을 엿보기보다는 코앞에 닥친 6.13지방선거의 추이와 결과, 월드컵의 진행상황,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질 정계개편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판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