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1.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씨는 화장실에서 옆 부서 차장이 A 회사의 M&A 가능성을 언급한 통화를 우연히 엿듣게 됐다. 그의 모친에게 믿을 만한 정보이니 2000만원을 대출받아 투자하라는 내용이었다.
박씨는 곧바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열어보니 이미 5% 정도 올라있는 상태였다. 평소 장기투자를 철칙으로 살아온 박씨였지만 혹시 고급정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 10분이 채 안돼 15% 까지 올랐지만 '사실무근'이란 공시와 함께 다음날 급락세로 돌변해 100여 만원의 손해를 봤다.
# 2. 코스닥의 한 회사 홍보담당자인 장모씨는 최근 잇따르는 인수·합병(M&A)설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몇달 전부터 증권 정보지에 M&A 소문이 떠돌더니 익명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가 나와 회사 주가가 급등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해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일 인터넷 카페, 블로그, 트위터 등 다양한 루트로 확대재생산돼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주식시장에는 인수·합병을 비롯해 수백가지의 '테마'가 존재한다. 기술 변화나 사회 이슈에 따라 새로운 테마주가 생기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테마주 그룹은 드론, 급속충전기, 핀테크, 요트마리나, 슈퍼박테리아, 비트코인, 에볼라, 메르스, 정치인 테마주 등 15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에는 불륜 테마주가 주식시장을 달구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성적 자기결정성 중시 등을 이유로 간통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게 발단이 됐다.
대표적인 종목이 콘돔 제작업체 '유니더스'였다. 유니더스는 국내 콘돔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로, 불륜이 늘면 콘돔 수요도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했다.
간통죄 위헌 판결이 내려진 2월 26일 상한가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날에도 장중 가격제한폭까지 뛰었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식 가격제한폭이 확대된 지난 6월 전후로는 유통주식수가 적은 '품절주'가 테마를 형성했고, 지난 7월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되면서 백신관련주가 들썩였다.
선거나 개각, 인선 등 정치 이슈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인 테마주'도 빼놓을 수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망론이 불거질 때마다 반기문 테마주가 주기적으로 동반 급등세를 나타냈고, 문재인 테마주, 안철수 테마주, 이완구 테마주 등도 이슈에 따라 들썩였다.
'정치 테마주'의 몸값은 일종의 모래성이다. 기대감에오른 주가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정치인 테마주에는 시세조종세력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아 개미들의 지옥이 되곤 한다.
황교안 총리가 후보자로 내정됐을때도 어김없이 '황교안 테마주'가 등장했다. 인터엠, 솔고바이오, 국일신동 등 3종목은 총리 발표 당일인 지난 5월 21일 동반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들 황교안 테마주들의 공통점은 대표가 모두 성균관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성균관대 출신 인사가 CEO로 재직중인 회사는 30곳이 넘지만 유독 이들 회사만 황교안 테마주로 분류된 것이다.
뚜렷한 실체 없이 학연이나 지연 등의 이유로 수혜주로 분류됐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다음날 이들 주가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세 기업이 어떤 경로를 통해 '황교안 테마주’로 묶였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말을 만들어내 주가를 부양했고, 뛰는 주가를 추종하는 개인 세력이 추격매수에 나서면서 관련 주가가 크게 올랐다고 짐작할 뿐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는 김무성 대표 관련주도 올해 주식시장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주다. 사돈 관계를 맺은 회사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이란 이유로 묶여 회사가 김 대표 이슈에 따라 급등락을 보여왔다. 최근인 둘째 사위가 마약 투약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관련주들 주가가 출렁였다.
자본시장연구원 정윤모 연구위원은 "한국 정치역사를 보면 정치인의 정치적 성패에 따라 (지연이나 학연에 따라) 기업에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던 게 정치인 테마주에 기대감이 생기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무 인과관계가 없는 종목이 시세조정을 하는 세력들에 의해 테마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2년 6월부터 대선 이후 1년이 지난 2013년 12월까지 총 18개월 동안 정치테마주로 분류된 147개 종목의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주가는 최고가 대비 평균 48%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3%에 해당하는 49개 종목에서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치 테마주는 허상에 불과하다"며 "풍문만으로 단기간 급등락을 할 뿐만 아니라 실적부진 기업의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기 때문에 고위험 테마주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M&A 테마주 역시 시세조정 세력들에 자주 이용당한다. 지금은 상장폐지된 엘앤피아너스 대표가 과거 다른 상장사를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워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이슈 없이 소문에 의해 급등락을 반복하는 M&A 관련주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쪽박을 찰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신한금융투자 이선엽 연구원은 "주식은 기본적으로 실적을 기반으로 해서 올라가야 하는데 실적 뒷받침 없이 단순한 기대감에 투자하는 것은 올바른 투자 방법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