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남저수지 어귀 겨울 논에 물을 가득 채우자 겨울 철새인 기러기와 오리가 찾았다. 이 철새를 보기위해 탐조활동을 위한 장소가 제공되면서 논습지도 훌륭한 생태공간이자 학습공간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겨울논에 물을 대면 생명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 같이 최근 농사를 짓지 않는 논도 가치가 있다는 시각이 주목받고 있다. 논습지도 생태학적인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환경 위기론 국제적 대두
논습지 보존과 관련된 문제는 환경적인 문제이면서 정치적인 문제기도 하다. 아시아의 몬순 지역에 있는 나라들은 논습지 보전을 농업을 위한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반면, 쌀을 수출하는 미국, 호주 등의 나라는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보기 때문에 논습지 보전을 위한 결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국제적 연대를 통해 사라져가는 습지의 위기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제도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14일부터 18일까지 타이 방콕에서 람사르 협약 COP10을 위한 아시아지역회의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이 회의에서 한일 NGO단체는 오는 10월28일 창원에서 개최될 제10차 람사르총회에서 ‘논습지 결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결과를 얻었다.
람사르 총회의 논습지결의안 채택은 법률적인 효력을 갖기보다는 선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논습지 보전을 결의하는 것은 논을 쌀을 만드는 농업으로서만이 아닌 습지라는 환경적인 가치를 국제적으로 부여함으로서 이 환경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정부나 민간이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결의안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논습지 결의안’은 아시아지역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6월에 대륙별 대표들이 모이는 상설위원회에서 COP10(10차 본회의)에 의제를 상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더욱 중요한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가치 과학적 입증 잇따라
습지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 결과는 늘어나는 추세다. 습지는 지구촌 생태계의 수맥이다. 수자원의 확보와 수질정화는 물론, 야생 생물의 생태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습지는 각종 무척추 동물과 어류, 조류의 서식지이다.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자연 조절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습지를 보존하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건강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마늘 양파 보리 등을 재배하는 밭으로도 습지가 이용되기도 한다. 자연 환경 보호와 각종 자원, 휴양 관광지의 기회 제공 등 습지의 경제적 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람사르총회 민간추진위 이인식 운영위원장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논습지는 사라진 야생동식물을 되돌아오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자 생태관광자원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고 주장한다.
한국생협연합회 논습지연구회 박인자회장 또한, “논습지는 논생물을 살리는 생명의 논이다. 논생물조사는 논에서 자라는 벼 이외는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제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가 논의 생물조사를 통해 먹을거리와 농업과 환경이 뗄 수 없는 생태계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산업화에 따른 훼손의 역사
지구촌은 산업화와 함께 이처럼 중요한 논습지의 대규모 상실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을 최근에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60년대 대규모 습지를 잃은 유럽은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제1차 당사국회의를 주도했다. 이후 람사르 협약은 물새 서식지인 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위한 많은 과제들을 다루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안의 갯벌을 메워 농지와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급속한 습지의 감소가 일어났다. 특히 정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인천을 포함한 경기지역의 갯벌은 감척 매립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습지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상당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습지의 경제적 효과를 에이커당 약 820만원으로 추정한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연안습지의 감소로 인한 어획손실이 약 2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주정부는 연안습지법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 오덤 교수팀이 계산한 결과에 의하면 갯벌 1ha는 하루 생물학적산소요구량 21.7kg을 정화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갯벌의 정화능력을 하수처리장 건설비용으로 계산하면 연간 47.5억원에 해당한다. 이 비용을 단위면적 당 갯벌의 가치로 환산하면 에이커당 약 155만원의 가치로 환산된다.
습지보호 사례 증가해
현재에도 습지개발 압력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에 대한 욕구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욕구에 발맞춰 습지보호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장항산단의 조성으로 매립의 기로에 서 있었던 서천군 일대 갯벌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해양수산부는 금강하구에 위치한 유부도 갯벌은 다양한 조류(鳥類)의 서식지로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검은머리물떼새의 30% 이상이 월동하는 중요한 서식렌沅寵値?널리 알려져 해마다 많은 관광객과 조류학자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선도리, 장포리 일원의 갯벌 역시 갯벌체험활동 수요의 증가로 매년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보전가치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는 판단 하에 개발보다는 보존을 선택했다.
윤현수 해양생태팀장은 “이번 서천갯벌의 습지보호지역 지정은 지금껏 갯벌을 쓸모없는 땅이라고 인식하고 매립만을 추구해 오던 국민의식과 정책방향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갯벌을 매립하는 것만이 발전이 아니라, 갯벌 보전으로 인해 더욱 커다란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매우 소중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농민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철새가 자기 논에 찾아오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던 농민들이 얼마 전 주남저수지 어귀 논에 물을 가득 채우고 차폐막을 설치했다. 나아가 주민들은 철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도로에서 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창문까지 만들었다. 철새들의 쉼터와 탐조활동 장소를 동시에 만든 셈이다.
한국생협연합회 관계자는 “주남저수지 인근 주민들은 농업과 철새들의 서식처인 논습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철새와 사람의 공존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논습지의 현명한 이용’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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