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족이기에 행복한 그들
외로운 노인들의 보금자리 ‘시온의집’
예닐곱의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시청하고 4살박이 어린애가
칭얼칭얼 어리광을 피운다. 두어 명의 노인은 낮잠을 청하고 몸이 아픈 한 노파는 침대에 누워있다. 그 사이를 한 명이 분주히 오가며 청소와
간병을 한다. 때로는 노인들이 실수한 대소변을 치우기도 한다. 20명 독거노인이 기거하고 있는 ‘시온의집’ 원장, 윤승호(46) 씨다.
대소변
처리도 성심껏
성남시 상대원1동에 위치한 시온의집은 무의탁노인을 위한 무료 생활복지 센타로,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사설기관이다. 노인들은 중풍 치매 노환
등으로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고, 소리지르고 욕하는 등의 정신불안증세를 보이는 이도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낮시간대 도움을 주긴 하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윤 원장과 부인 유남숙(44) 씨가 책임진다.
“솔직히 힘겨울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신앙의 힘이 버티게 합니다”라는 윤 원장은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 신자지만 인간일 수밖에 없기에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남을 돕는다는 마음이 아닌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라는 믿음으로 인내한다고 한다.
윤 원장이 처음부터 봉사자의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업가였던 그가 새로운 길에 접어든 것은 1991년 사업실패 후였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방황의 나날 속에서 문득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이 떠올랐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죽음의 문턱에서
항로를 바꿔 새로운 삶을 설계한 마치 영화같은 인생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반대했고 설득의 시간은 오래 걸렸다. 1997년 윤 원장이 대장암으로 다시 죽음의 문턱에 선 것을 계기로
가족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시련 속에서 참된 진리를 찾은 것이다.
“지금은 아내가 누구보다 헌신적입니다. 아이들도 노인들의 대소변을 받아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등 성심껏 도와주고요. 모두 감사할 따름입니다.”
20명의 부모를 둔 윤 원장
1999년 1월15일, 시온의집 정식 개원으로 윤 원장 가족과 노인들의 동거는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특별한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재정난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비록 없는 살림에 월세방이지만 보일러 공사를 감행하기도 했다. 남들이 “돈도 없으면서 뭘 이리 투자하냐?”고 핀잔을 줬지만 윤 원장은
“고생하며 살아온 노인들을 단 하루라도 편히 쉬게 하고 싶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마음을 알았는지 가끔 어떤 노인들은 용돈을 아껴 슬그머니 선물을 밀어주기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했다. 푼돈일 수도 있고 아주 소박한
선물일 수도 있지만 윤 원장 가족은 그럴 때마다 최고로 행복하다고 한다. 단순히 봉사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손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서이다.
한편, 윤 원장은 네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4살 늦둥이까지 친자식이 세 명, 친자식같은 아이가 한 명있다. “모두 제 자식입니다”라는
윤 원장은 “저에게 맡겨진 소중한 생명”이라며 오히려 감사한다.
칭얼대던 늦둥이가 잠이 들었다. 노인 한 명이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동안 지켜보는 노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퍼진다. 풍요롭지는
않지만 ‘가족’이라 부를 수 있기에 그들은 너무나 행복하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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