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 문제지 유출사건이 잇달아 경찰에 적발되면서 강남 사교육계에 일대 파란이 일고 있다. 미국과의 시차를 이용해 태국에서 시험지를 빼돌려 미국에 보낸 강사가 검찰에 검거된 뒤, 또다시 시험지 유출 사례가 경찰에 적발되면서 경찰의 수사는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아는 사람만 안다던, ‘그들 사이의 비밀’로 부쳐졌던 시험지 문제 유출사건이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강남 일대 학원가는 비상 상태에 걸렸고 그 실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SAT학원가, 방학기간 유학생이 타깃
SAT 시험지 유출사건으로 학원가는 발칵 뒤집어졌지만, 이제야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그만큼 공공연한 사실로 인식되고 있었고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시험지를 통째로 거래한다’거나 ‘유출 문제지를 공유하는 모임도 있다’더라 하는 온갖 소문도 나돌고 있다. 강남 학원가에서 일하고 있는 한 강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SAT 뿐 아니라, 편입, 토익, 토플 등 문제유출이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며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반응이다.
문제가 된 SAT시험은 어떤 시험이길래 이런 파문을 몰고 온 것일까.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과 비슷한 SAT시험은 연중 7~8회 치러지며, 해마다 전세계에서 300만명 정도 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어 응시도 가능하다. 토익과 토플시험을 주관하는 ETS가 출제와 평가를 맡고 있는데, 이 시험이 갖는 공신력이 상당하다.
일단 미국에 있는 주립대 이상의 명문 대학들은 입학 사정과정에서 대부분 SAT 성적을 참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한국 학생들은 1차관문격인 SAT를 거의 거친다고 보면 된다.
에세이 시험과 비판적 독해, 대수학 등 3가지 과목 총 2400점 만점에 2100점 이상을 받아야 유명 사립대나 명문대를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번 사건의 요인을 굳이 따지자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기엔 SAT 성적이 부족한 강남 부유층 자제들과,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스타강사들의 합작품인 셈이다.
1년에 7~8번 치러지는 SAT 국내 응시생은 매회 1,000명 안팎으로 서울 강남과 분당, 일산 등지에서 SAT전문학원 100여곳이 성업 중이다. 이 가운데 기업 형태를 갖추는 곳만 40곳 정도. 국내 SAT학원 시장은 대부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유학생들이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유학생들이 방학을 맞는 12~1월, 6~8월에 집중적으로 운영되고 이 기간에만 반짝 문을 열었다 사라지기도 한다.
한 달 수업료만 300~500만원
수업료는 학생수와 1회당 수업시간,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월 100~5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보통 SAT전문 학원이 집중된 강남 일대의 경우, 300~500만원 선이 일반적이라고. 학원생 K군은 “미국에는 SAT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없어 유학생들이 방학이면 통상 귀국해 국내 학원에 들어간다”며 “수강료엔 일대일 컨설팅 비용이 포함되는데 1년에 3,000만원 하는 VIP 컨설팅도 있다”고 귀띔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원에서 ‘스타강사’는 부르는 게 값이다. 소수의 유능한 강사들이 학원수업 외에 개인지도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개인지도 비용은 학부모와 강사가 합의하는 선에서 결정되는데 유능한 스타강사의 경우, 한 달 개인지도 비용만 200~3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스타강사가 되기만 하면 ‘돈방석’에 앉는 것이나 다름없다. SAT학원에서 스타강사로 이름을 높이는 데는 기출문제를 얼마만큼 빠르게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족집게 스타강사’라는 입소문만 나면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벌 수 있다 보니 기출문제를 확보하려고 무리한 방법을 썼던 것이다.
강사들 대부분이 시간당 수당을 받게 되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돈 벌 수 있는 길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리고 강사의 실력은 기출문제의 소유여부와 양으로 판단된다. 큰 돈을 쉽게 벌기 위해서 문제유출의 유혹을 떨칠 수 없다는 얘기다.
스타강사의 조건
수학과 물리학의 스타강사인 장씨는 족집게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2주간 수업료가 300만원인데도 그의 수업을 들으려는 학원생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SAT 영작에 독보적이라고 소문난 S강사의 경우 한 시간 수업료가 30만원. 한 달에 무려 2,000만원이 든다고. 이번에 태국에서 SAT 문제지를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김 모씨의 경우도 1회에 280~300만원씩 한 달에 10차례 이상 월 3,000만원 이상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학생들이 몰린 데는 불법적으로 빼돌린 시험문제가 결정적이었다. 문제지 자체를 유출하지 않더라도 알바생을 고용해 문제를 외워오게 하는 것은 SAT 학원계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학원업계 관계자는 전한다.
하지만 그만큼 수요가 많으니 공급이 있는 법. 학부모와 학생들의 과욕이 스타강사들의 빗나간 행위를 부채질했다. 유학생 중 일부 학부모들은 거액의 금품을 통해 시험지 유출을 요구한다는 얘기도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실력이 안되는 자녀를 조기 유학을 보내거나, 이미 보낸 부모들은 어느 정도 재력이 있다 보니 수천만원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어떤 학부모는 학원 등록시 대놓고 학원 선생님들이 기출문제를 많이 갖고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한다.
시험지 유출은 허술한 시험관리도 문제가 있다. SAT는 외국어고와 국제학교 등 전국 22곳에서 실시되는데 시험관리나 감독은 시험주관사인 ETS가 아니라 고사장으로 쓰이는 학교가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관리가 느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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