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사태가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본사 점거 농성의 해산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던 포스코사태는 지난 1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뇌사상태에 빠져있던 하중근 조합원(44세)의 사망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건설노조와 민주노총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진압에 나선 경찰과의 충돌에서 14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포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하중근 조합원의 사망을 비롯, 대규모 집회 때마다 수십 명, 많게는 백 명 이상의 부상자와 대규모 구속, 손해배상 등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본사점거,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일 하중근 조합원의 사망으로 그들이 하고 싶던 말은 잊혀지고 경찰의 과잉진압, 원청인 포스코의 방관, 정부의 별다른 대처가 없어 조합원들의 폭력시위만을 부추기고 있다.
오야지 눈치에 불평은커녕 한숨도 못쉰다
“죽음을 불사하는 극단적인 투쟁 방식은 대개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선택입니다. 이런 건설노동자들이 극단적인 투쟁을 불사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한번쯤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포항지역에서만 10년을 일했다는 이정근(46세)씨의 첫 마디였다. 이정근씨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지난 3월에는 일요일에도 쉬어본 적이 없고, 보통 밤 10시, 12시까지, 심지어는 새벽 4시까지도 일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일해도 120만 원 벌어가기 힘든데 그나마 일도 없어질까 오야지(팀장) 눈치 보느라 바빠요.” 전 산업에 주 40시간 노동을 실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여전히 7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하루 일당 7만원의 저임금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어 이씨는 “어느 날은 ‘8시간 노동을 하고 싶으면 보따리 싸서 집에 가라. 7시부터 근무를 하지 않을 경우 대체 인력을 투입하고 전원 해고 시키겠다’는 공문을 현장에 붙이기까지 했어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공참여자 제도, 왜 만들어 졌나
이 같은 구조가 형성될 수 있게 된 것은 ‘시공참여자 제도’에 따른 것이다. 시공참여자 제도는 성수대교와 삼품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한 1996년, 부실시공 방지대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야기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전에 오야지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인력 모집책에 불과했지만 시공참여제의 시행으로 오야지가 직접 근로를 하면서 건설현장의 중간 관리자에 불과한 오야지에게 임금과 4대보험, 심지어 일용직 인사관리까지 전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고용불안, 과다한 업무, 임금체불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고, 산재로 생명을 잃어도 책임소재가 원청과 오야지 사이에서 불분명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고질적인 병폐, 불법다단계하도급
다단계하도급은 지난 3월 덤프연대의 파업 원인의 하나였다. 지난 해 정부가 책정한 평균 품샘은 덤프 1대 당 100만원∼120만원이지만 중간에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고 나면 실제 덤프노동자 손에 쥐어지는 돈은 3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전 산업에 걸쳐 고질적인 병폐로 작용되고 있는 다단계하도급. 국내 건설산업기본법에서도 다단계 하도급은 2단계까지만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건설현장을 가보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 - 도급오야지가 이어지면서 적게는 3단계에서 많게는 7단계까지 꼬리를 물고 있다.
결국 건설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저임금의 원인인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를 깨뜨리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고 요구는 합당한 것이지만 불법다단계하도급 구조 속의 원청인 포스코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전문건설업체는 단체협약에서 서로 합의됐던 안들을 다시 들고 나와 경영권과 인사권을 침해한다며 협상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건설노동자들은 하소연 할 곳이 없어진다. 바로 이 점이 포스코 점거투쟁의 핵심원인인 것이다. 업계관계자들도 “포스코가 대체인력투입으로 문제를 촉발시켰고, 포스코가 일찍 나섰다면 이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원인을 꼬집었다.
법적으로 따지면 죄인은 ‘건설노동자’
다른 현장도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B건설의 하청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최광호(32세)대리는 “인건비가 싼 노동자를 쓰거나, 공사금액이 낮게 책정된 업체를 찾는 것은 공사비를 낮춰야 하청을 계속해서 받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원청업체가 전문건설업자에게 하청을 주고, 실제 공사는 시공 참여자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하청을 맡김으로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하청의 문제가 시작된다. 더 큰 문제는 단계마다 10% 정도의 이익을 챙기고 또 하청을 주는 브로커 구조인데 현장의 노동자들은 몇 번의 재하청을 거치면서 낮아지는 공사비로 인해 받는 일당은 2중, 3중으로 떼이고 난 뒤에나 받을 수 있다. 노동청의 한 관계자는 “토목업체들이 9~10시간의 장시간 노동 시키는 것과 하청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진해되어 온 관례였기 때문에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결국 포스코 사태에서 보듯이 문제가 터져도 법적으로는 하청업체와 현장 노동자들의 갈등일 뿐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포스코사옥을 불법 점거하고 허가되지 않은 집회를 가진 노동자들의 죄가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 사옥을 점거하면서까지 주장하던 장시간 저임금, 불법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깨뜨리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묵살한 채 1명 사망, 수 백명의 부상자, 57명의 대규모 구속, 손해배상 등 복잡한 실타래를 만들어 낸 포스코사태. 임금수준, 노동시간, 주5일 근무 등 세부항목을 둘러싼 논쟁이 하중근 조합원의 죽음으로 맹수들의 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교섭대상이 포스코인 만큼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기위해서는 포스코가 직접 나서야 하고 고질적 원인에 대해서 정부가 나서 해결해야 하지 못한다면 장기간의 업무마비로 인한 크나큰 손실 뿐 아니라 국가 경제 및 대외 신인도에도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제2의, 제3의 포스코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