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오전 8시 26분 2014 동계올림픽유치가 ‘소치’로 넘어간 순간, 평창은 또한번 좌절했다. 4년전 실패의 기억보다 그 아픔의 강도는 훨씬 더 했다. 4년 전 벤쿠버에 막판 아쉽게 탈락한 경험은 재도전의 희망을 주었다. 사실 당시엔 ‘얼떨결’에 좋은 성적을 거두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국민적 염원은 소치나 잘츠부르크보다 뜨거웠고, 특히 평창군민의 지지는 세계의 호평을 받았다. 4년 전과는 다르게 체계적인 준비와 재계의 지원, 대통령의 홍보유세까지 유치 의지는 대단했다. 실사단의 잇따른 호평과 투표 직전에 펼쳐진 막판 프리젠테이션(PT)도 “원더풀”이라는 평이 쏟아져 평창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듯 했다.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소치!” 호명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당초 평창의 경쟁상대로는 역부족이라는 평을 받았던 소치가 대역전극을 펼친 것. 예상치 못한 결과에 한국 대표단원은 절망했고 평창은 울음바다가 됐다.
스포츠 외교력 부재
이번 실패는 4년 전 체코 프라하에서의 실패와 닮은 모습이다.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2차 투표까지 갔다가 역전패 한 것이 같다. 잘츠부르크가 탈락하면서 2차 투표에서 졌다는 점도 4년 전과 똑같다. 평창은 1차 투표에서 38표를 획득, 소치의 34표, 잘츠부르크 25표를 앞섰다. 하지만 과반수의 득표라는 규정에 따라 2차 투표에 나섰고 결국 소치에 47대 51, 단 4표 차로 지고 말았다.
하지만 4년 전보다 득표수가 15표나 줄어든(36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번에 1차 투표에 참여한 IOC위원 수는 95명으로 4년 전 107명에 비해 12명이 줄었다. 이것을 감안할 때 표가 줄어든 도시는 사실상 평창 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소치는 득표수가 6표 밖에 줄지 않았다. 발표 후 김정길 KOC위원장은 “2010년 우리를 지지했던 아프리카와 남미 표를 러시아에 많이 뺏겼고 아시아 표를 지키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듯’ 평창이 이번 유치에 패배한 원인은 뭘까. 일단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는데도 2차 투표를 사전에 대비하지 못했다. 어차피 97명이 참가한 1차 투표에서 승부수를 확정짓기란 무리가 있었다. 1차 투표 후 떠다닐 부동표를 공격적으로 포섭했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잘츠부르크의 선전으로 나타난 유럽의 벽을 이번에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평창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 말았다. 좀 더 전략적이 치밀한 승부수를 띄웠어야 했는데 안일했던 것이다.
평창은 잘츠부르크와 소치가 유치전 내내 악성 비방전을 펼쳐 2003년 프라하 총회에서 당했던 것처럼 이탈표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히려 잘츠부르크의 표가 지원군이 돼 줄 것이라 기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발로 뛰며 가장 많은 유치위원들을 만날 때, 고압적인 자세로 유지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미지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제대로’ 빗나갔다.
소치의 성공 = 푸틴의 성공
소치의 성공은 분명 ‘푸틴의 성공’과 같다. 푸틴 대통령은 적극적인 외교와 무량 공세로 남미와 아프리카 표를 쓸어 모았다. 실사단의 평창이 평가부터 마지막 PT까지 순조로운 항해를 하는 동안 공격적인 외교면모를 보였다. 푸틴은 직접 유치에 앞장섰고 경기장 건설에 120억달러(1조1300억원)을 투입하겠다며 총력전을 펼쳤다.
현지 실사때는 기반 시설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의식해 직접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깜짝쇼까지 벌였다. 러시아 경제가 에너지산업을 앞세워 급성장한 것도 푸틴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 푸틴이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볼모로 유럽의 IOC위원들을 압박했고 투표결과 IOC위원 일부가 푸틴의 손을 들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돈과 명성으로 무장한 푸틴을 넘어서기란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것.
알프레드 구젠바워 오스트리아 총리가 1차 탈락 발표 후 “정치 경제 문제가 유치에 있어 결정적인 문제로 작용했다”며 “IOC의 결정은 스포츠와 올림픽 활동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 기류를 감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일부 유럽국가를 포함해 상당수 국가들의 경제 흐름을 바꿀 정도의 파워를 지니고 있어 유럽의 IOC위원들은 올림픽 정신 실리를 택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는 ‘2011년 세계육상’과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선정되는 등 국제대회 독식이라는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디회의 경제적 파급력 때문에 국제 스포츠계는 관행적으로 ‘안배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하계올림픽과 월드컵 대회가 대륙별 순회 개최 관행을 고수하고 있고 특정 대륙이나 국가에 연달아 개최되는 것을 금기시하는 국제 체육계로서는 평창에 힘을 실어주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두 번째 동계올림픽 유치계획이 결국 무산됐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어느 때보다 크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벌써 평창이 세 번째 도전을 할지를 두고 이견들이 많다. 평창 군청 관계자는 “군민들은 당분간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다”며 “평창이 다시 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재도전의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다. 동계 스포츠의 대표도시라 할 수 있는 잘츠부르크를 2번이나 맞서 물리쳤고 안타깝게 물량공세를 퍼부었던 소치에 밀리긴 했지만 1차 투표에서 승리한 바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