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를 신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는 성경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족속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합니다. 기드온은 이를 거절하지요.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고 자금을 마련하여 불량한 사람들을 모아 이복형제 칠십 명을 죽입니다. 다행히 막내아들 요담만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이 세상에서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근심 없이 평강 가운데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전폭적으로 믿고 맡길 때 참된 안식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또한 들의 백합화도 수고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보살펴 주시겠습니까? 솔로몬왕은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군사적 기반을 든든히 닦아 놓았기 때문에 안정과 풍요 가운데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궁중에서 쓰는 모든 기물이 다 정금이었기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않았고, 고급 목재인 백향목도 뽕나무같이 흔하게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솔로몬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농작물은 비바람과 따가운 햇살을 견뎌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믿음으로 연단을 견디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오게 됩니다. 어떤 고난도 사랑으로 인내하며 모든 것을 믿고 바랄 때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연단을 극복하고 실한 열매로 나오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굳게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려면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해 참아야 할 일도 많으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애매히 고난받는 일도 생깁니다. 이러한 일을 만났을 때에는 ‘나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구나.’ 하며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이 길어지면 ‘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을까?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고 인내할 때에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둘째, 소망을 이루는 지름
많은 사람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어두운 곳에서는 더러움이 보이지 않아도 아주 밝은 빛이 비추이면 미세한 먼지나 얼룩까지 드러납니다. 이처럼 진실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진실한 삶을 살 때 응답과 축복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하는 거짓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행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말하거나, 행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재판에서는 증인의 말이 직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줍니다. 거짓 증언으로 무죄한 사람이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고, 심지어 생사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말이 얼마나 나쁜지 확연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재판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남을 정죄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정황을 바르게 분별해야 할 것과, 거짓 증언을 한 사람도 형벌을 받도록 하라고 했습니다(신 19:15~20). 또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하는 사소한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 작은 거짓말은 물론, 사실을 말해야 할 상황에서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이 됩니다. 예컨대, 자신의 잘못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참된 만족과 안식을 얻기 원합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가정의 화평이 깨어지고 부부의 이혼율이 높아져 가는 추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부부간에 화목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3을 보면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말씀하십니다. 즉 가정을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면 남편은 머리, 아내는 몸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머리는 몸을 이끌고 돌보아 주며, 몸은 머리를 경외하고 순종함으로 상호 협력할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5:22~23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을 주라 칭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면 결단코 그 앞에 무례히 행치 않을 것이고, 혹 자기 생각에 안 맞는다 해도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해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들은 아내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에베소서 5:25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혹자들은 골프를 우리들의 인생과 비교를 하며 절대 정복을 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들은 정복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고, 구시대적인 골프 방식만을 추구하지 않았나 뒤돌아 봐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제3차 산업을 넘어 제4차 산업의 시대가 열리고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을 정복하였듯, 이제는 골프 또한 시대변화와 더불어 59타라는 꿈의 타수를 실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전 세계 골프 코스(아시아, 미국, 유럽)에서 골프 전문가들이 직접 경험한 상황들을 수집한 자료를 미국의 골프 인공지능(Al)개발자의 인공지능(Al)에 빅데이터화 시킨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탄생한 내 손안의 골프코치 어플리케이션(앱) BigDataGolf 59가 그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으로 빅데이터화 시킨 자료를 학습시켜 최적화된 코스공략 결과물을 가지고, 한국 최고의 앱 프로그램 기술자들의 손으로 탄생한 이 어플리케이션은 지금까지 기존의 골프 앱과는 차별화 된 누구나 쉽게 골프를 즐길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앱이라는 점에서 골프인 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골퍼라면 누구나 최저타를 내기위해 수많은 시간과
예로부터 선인의 참된 정신은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 13:22을 보면,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선인이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에서 진리가 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선인은 단지 악을 버린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는 단지 재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결한 정신이나 가문의 힘 또는 권세나 여러 가지 사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선인은 어느 한 분야만 온전한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잘하여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아갑니다. 성경 상에 나오는 표본으로는 아브라함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요? 첫째,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옳다 하는 의가 아니요, 진리의 말씀에 따른 의를 이루었으므로 죄가 들어올 수 없었고 선을 좇아 온전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의를 생명처럼 굳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 종과의 관계에서의 의, 그리고 조카 롯과의 관계에서의 의 등 모든 분야에서 굳게 지켜
약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부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첫째, 영원한 삶이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최근에는 ‘죽으면 끝나버릴 단 한 번뿐인 짧은 인생, 하루를 살더라도 즐기며 살아야겠다.’ 하는 가치관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세의 행복을 추구해도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지요. 이는 마음 한편에 죽음 곧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써 부활의 표본이 되어 주셨고,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부활에 참예하여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으면 육의 몸이 설령 죽어도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다시 살아납니다(요 11:25~26). 이에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 하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그러하셨듯이, 성도들도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무덤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며 신령한
사람은 부모의 얼굴은 물론 성품까지 닮아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부모의 성품이 온유하면 아이도 대체로 온유한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사람의 성품은 선천적인 요소 위에 후천적인 요소가 더해져서 형성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데 어떤 성격이 좋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격적인 특징이 너무 두드러지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화평이 깨어지며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소통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많은 사람이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노력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격의 유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변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대화를 할 때에 행복한 말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근심과 걱정을 전달하고 은혜와 덕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은 누군가에게 실수를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그것을 만회하거나 상대를 기쁘게 해서 관계를 회복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요. 혹여 어려운 일이 생기면 믿음으로 이겨 나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으로 힘들어합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조차 ‘혹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염려하며 참 평안을 얻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찾아 참된 평안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왜 이 땅에 왔으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본분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참으로 평안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자기 자신을 깨닫고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육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내 나이가 몇이며 본분은 무엇이고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분별하고 그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육적인 면을 잘 알고 거기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삶의 보람을 느끼고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적인 면에서도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자기 위치와 직분을 깨달아 맡은 일을 잘 감당해야 하지요. 구역장은 구역장으로서, 교사는 교사로서, 성가대원은 성가대원으로서의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삶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들을 쌓으며 성장합니다. 보고 배우는 것은 행동과 습관뿐만 아니라 인격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과 생각에 담기는 내용이 달라지고 이로써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맹모삼천지교’라는 유명한 고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린 맹자가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 때는 곡하는 것을 따라하고, 시장 근처에 살 때는 장사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놀았습니다. 이에 맹자의 어머니가 서당 근처로 이사하자 그제야 글을 가까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비진리, 악한 것을 보면 그것이 마음에 담기거나 그것으로 인해 마음과 생각에 있는 죄성들이 요동합니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을 많이 보면 성격과 마음도 폭력적으로 물들고, 선정적인 것을 보면 그것이 뇌리에 남아 계속하여 비진리의 생각으로 빠져들지요. 싸우고 다투는 것을 보면 짜증과 혈기가 마음에 담기기 쉽습니다. 눈으로 본 것이 마음에 있는 죄성을 요동케 하는데, 이는 안목의 정욕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어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지난 2018년 12월 17일 KBS2 시사프로그램 <제보자들>에서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항운·연안아파트 주민이주 문제를 심충분석 했다. 1983년에 건축된 항운아파트(510세대)와 1985년에 건축된 연안아파트(765세대)는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물류센터들이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파트가 물류단지에 갇혀버린 형국이 돼버렸다. 하루에 화물차 1만대 이상이 드나들고 평균 3만6천대의 컨테이너가 유입되며 소음과 먼지 그리고 악취까지 더해져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항운·연안아파트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그야말로 '비둘기아파트‘라 부르는 게 맞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저 지경이 되도록 정부에서는 무얼하고 있단 말인가?” “행정부처간의 돈 싸움에 서민들만 골병들어간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방송이 나간 지 1년이 넘었지만 나아진 것은 없다. 그동안 이 문제로 인천시와 인천해수청간에 줄다리기를 계속해왔는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18년 1월 인천시는 이주예정부지(국유지)⇔북항부지(시유지)⇔주민아파트부
봄이 되면 나무마다 푸른빛이 돌고 어느새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꽃향기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향기로운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향기로 상대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기 원하시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선으로 마음을 채우면 그리스도를 닮은 향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에게서는 어떤 향이 날까요? 먼저 그리스도의 향기는 ‘겸손과 섬김의 향’입니다. 마태복음 20:28에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심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놀라운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히 섬기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오므로 때론 잡수시지도 주무시지도 못했지만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겸손과 섬김의 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변화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주님처럼 겸손과 섬김의 향이 나야 합니다. 가령, 윗사람